어머니

손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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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그릇을 채우는 것으로
평생을 늙히셨다

때로는 심술에
때로는 주정에
줄줄이 상처만 남은 사발

어둠도 지친 이슥한 밤이면
스스로의 눈물로 채운 사발에서
별을 건져내어
달을 씻어내어

어린 사발들
채우는 것만이
주름을 꽃 피우는 보람이더니

의학박사 아들에게도
배 아프다면
소금과 물을 담아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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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섭: 서울의대 및 대학원. 충남대 일반외과 교수 역임.
1975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사람을 그릇에 비유한다. 사람마다 각자의 그릇이 있다. 아니 어쩌면 사람은 그 자체가 나름의 그릇이다. 어머니가 그릇이고 그릇이 어머니다. 어머니의 그릇에 줄줄이 새겨진 상처는 나의 사발을 튼튼하게 빚으시느라 또한 쓸모 있는 것들로 채우시느라 입은 것들이다. 나의 그릇이 꽃으로 가득하여 평안과 행복이 활짝 피어 가득하길 기구하시는 어머니의 주름살이다. 겉으로 속으로 겹겹이 꾸겨진 어머니 그릇의 상처들이다. 그것도 대부분 나의 심술과 주정이 꾸기고 그어놓은. 최신 의학을 익혀 진료하고 있는 나의 진료실로 어머니는 그릇의 형상으로 함께 하신다. 삶이 힘들고 벅차 못내 아플 때마다 어김없이 어머니는 이제는 깨지고 허술한 그릇에 만병통치 명약을 담아 오신다. 어머니의 사발은 의학박사인 나의 아픔을 지금도 치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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