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나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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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산마을에 사는 이들이
산이 좋고 물이 좋고
바람이 좋다 하네
도시에
평생 붙잡힌 나
문득
빌딩 숲이 산이요
도로가 계곡물이더라
병든 것인가
위로를 받은 것인가
도시에서도 이렇듯
마음 고요한 것
사람이
토끼고 고라니고
꽃이더라
앞산에 걸린 반달이더라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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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철 원장은 전남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상에 당선됐으며, 강남 신사동에서 나해철성형외과의원을 개원하고 있다.

자, 필기도구를 들고-아니면 눈을 감고 머리 속에 맨 손가락으로-시를 따라 그림을 그려보자. 두 세 봉우리의 산을 솟게 하고 적당한 흐름으로 계곡을 흐르게 하자. 이제 그 그림을 여러 번 조금 빠른 속도로 반복하여 그려보자. 점점 그림이 단순화되며 산은 빌딩으로 계곡은 차량 가득한 도로로 변해가는 마술을 어렵지 않게 부리게 될 것이다. 순서를 바꾸어 빌딩과 도로를 먼저 그린 후에 같은 방식으로 해가면 이젠 산이 솟고 계곡이 흐른다.
마술을 잘하는 것도 병이라면 병일 게다. 직업병. 능통하면 거기에 빠진다.
도시 한 복판에서 진경산수(眞鏡山水) 한 폭 가슴 한 복판에 그려 놓는 일. 하늘의 달과 별에서 땅 위의 아름답고 따스한 꽃과 동물까지 한데 놓아 모은 십장생도(十長生圖). 우리는 오늘도 도시 한 복판 진료실에서 마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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