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입시철이 돌아 왔다. 대학민국에서 의과대학 입학은 수험생들과 그 가족들에게 최고의 영예를 가져다주는 가문의 영광이 되어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민들은 의사들을 불신하고 비난하면서도, 자신의 자식들은 의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의사과잉 배출로 의사수가 10만명을 넘어섰다. 개업할 자리가 없어 전전긍긍하다가 개업에 실패하거나 병원 운영비는 물론 기초 생활비조차도 벌기 힘든 개원의들이 전체 의사의 절반에 가깝다. 그런데도 의과대학을 선호하는 데에는 과거 풍족했던 황금시대 (2차 대전부터 1980년대)에 보아온 의사들의 풍요로움이 그들에게도 주어 질것이라는 환상 때문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는 왜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먼저 우리의 졸속 근대화 과정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私)를 추구하지 않는 척하며 사실은 숨어서 온갖 사적 욕망을 추구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익을 용납하지 않던 유교적 문화 정서가 사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자본주의적 근대성과 만나면서, 왜곡되고 이중적인 모습으로 변동되어 현대 한국인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빚어낸 것 같다. 이러한 동양적 사상 때문에 이들이 바라보는 의사상이 왜곡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의사가 되려고 하는 본인들은 상업주의적 시각으로 접근하면서, 정작 의사가 아닌 입장이 되었을 때에는 상업주의적 사고를 가지면 안 된다고 비난한다. 더 나아가 왠만한 성인군자가 아니면 지키기 어려운 도덕기준과 행동을 의사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한없는 의사직의 추락현상이다. 대한민국 의사교육의 태생적 문제점 때문에 발생된 면도 있다. 부를 쌓는다는 것이 흠이 될 것이 없다. 그런데 흠이 될 수도 있다. 품위 없는 생각이나 행동, 언어를 사용하게 될 때 흠이 된다. 바로 의료 인문학을 통한 전인 교육의 미비에 따른 성숙하지 못한 행동들 때문이다. 의사라는 특권을 누리면서 남에게 베풀고 겸손했어야 하는데도 언어적으로나 행동으로나 성숙하지 못한 면들을 많이 보여 왔던 결과이다. 환자에게 반말을 하고, 겸손하지 못 했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의 건강을 위해 고민하고 정책을 제시하는 사회 리더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의료를 단순한 의학지식과 기술만 가지고 환자를 대하는 것이 의사로서 할 일이라고 배워왔던 치명적인 결점 때문이다. 문제의 원인을 일제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분도 있다.

의학교육에서 인문학부분을 빼고 단순히 의학지식만을 가르쳐 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의사로서 갖추어야할 덕목과 역할에 대한 인문학적 교육 없이 의료 기술직만을 양성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현대의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 이런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대응하려는 시도가 없었다. 최근에 들어서야 이러한 왜곡된 의사상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들이 구체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바람직한 좋은 의사의 역학과 갖추어야할 덕목들의 초안을 만들고 그 동안 비어있던 의료인문학의 빈 공간을 채워보려고 하고 있다. 사회의 리더로서 역할, 세련되고 절제된 언어 사용, 전문직이념을 가지고 환자와 동료를 배려하는 행동, 자정활동, 환자와 소통하고 환자의 고통과 아픔을 배려하려는 정책제안등이 주 내용이다. 이제라도 의과대학 교육에 의료인문학 비중이 늘어나도록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 처음부터 좋은 인성을 가진 사람들이 의과대학에 들어오도록 까다로운 면접시험을 통해 입학 기준을 강화 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의 롤모델(role model)이 되는 의과대학 교수들에게 세련된 언어사용과 에티켓, 소통의 방법에 대한 재교육이 필요하다. 좋은 품종의 씨앗이 좋은 열매를 맺고,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과 교육을 통해 의사로서 갖추어야할 품성과 행동을 갖추어 갈 때, 이 땅에서 왜곡된 의사상이 바로 서고 진정한 의사들의 황금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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