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얼마 전 일본인 부부가 태국에 가서 체외수정 후 수정란의 염색체를 조사한 뒤 딸을 골라 낳는 일이 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2011년 9월 25일 보도했다. 외국의 시민권을 갖기 위해 원정 출산을 하던 우리나라 부모들의 행동은 이에 비하면 너무나 초보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독일 등은 인종적 우생(優生)사상에 연결될 수 있다며 수정란 진단검사를 금지하고 있고, 일본은 중증 유전병이 의심될 경우 이용된다. 하지만 태국은 최근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약 15개 의료기관이 자녀의 성별을 선택하려는 일본이나 중국, 인도인 부부에게 수정란 진단을 해주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착상 전 유전자진단이라는 의학기술을 아들 딸을 선별하여 낳는 방법으로 왜곡하여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착상 전 유전자 진단( preimplantaion genetic diagnosis; PIGD)은 수정 3일 이후 체외 수정란의 세포가 4∼8개로 분열했을 때 이중 1∼2개를 채취하여 특정 유전자 서열이 정상적으로 존재하는지 혹은 결손 되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이 검사 방법의 목적은 원래 염색체 이상이나 클라인펠터 증후군, 듀센씨 근이양증등과 같이 유전적으로 전달되는 질병을 사전에 진단하여 이들 질환을 피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착상 전 유전자 진단은 그 목적과 달리 부모가 원하는 유전 형질을 가진 아이를 낳거나 원하는 성별을 선택하는 맞춤형 아이(designer baby)를 갖는 방법으로 이용 되고 있는 것이다.

맞춤형 아기는 2000년 8월 미국에서 처음 탄생했다. 판코니 증후군을 앓고 있는 누나에게 골수를 제공할 목적으로 12개의 수정란을 검사하여 선택적으로 출생했다. 자녀의 출산을 특정한 목적을 위해 수단화 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2003년 영국 법원이 형제 자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맞춤 아기의 출산을 합법이라고 판결을 함으로써 허용 가능하다는 주장도 받아 들여 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수정란 검사방법이 더 발전하여 널리 보급될 경우, 지능이나 외모 , 건강등 부모가 원하는 형질을 가진 아이를 선택적으로 낳을지도 모른다. 이럴 경우 우월한 형질과 열등한 형질을 구별하여 차별하는 우생학적 가치관이 고착화 될 수 있다. 우생학이란 인류의 유전자를 ‘개량’하여 한 층 우수한 인종을 만들겠다는 이론이다.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인종은 제거하고 우수한 유전자만 가진 인종만 남겨서 인류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다. 얼핏 그럴 듯 해보이지만 이 이론은 유대인 학살의 범죄을 낳게 하는 기초가 되었다. 독일 나치들은 우수한 인종인 게르만 족은 번성하고 멸종되어야할 인종(유대인) 그리고 지배를 당해야할 인종(슬라브족, 라틴,동양인)으로 구분하고 인종말살정책으로 잔인한 인체실험과 유대인 학살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도 한 때 불구나 정신지체 장애자들을 죽이거나 강제 불임수술을 시켜버리는 우생학 정책을 실시한 적이 있었다. 만약 이런 우생학적 사고의 지배가 만연되는 시대가 온다면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 생존하기 힘들어질 것이고 돈있고 권력있는 사람들만 세상을 지배하는 차별의 시대가 도래 할 지도 모른다. 말판 신드롬을 가지고 있었던 링컨 대통령은 태어나지 못 했을 것이고, 루 게릭병을 가진 스티븐 호킹 박사같은 천재 과학자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 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초음파기술의 발달과 함께 시행되었던 성감별로 수많은 태아가 사라져갔다. 이제는 착상 전 유전자 진단을 이용하여 우수한 형질의 맞춤형 아기를 선택하는 비윤리적 우생학 광풍이 우리를 위협할지 모른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넘어서는 안 되는 윤리적 기준을 미리 예측하여 법으로 만들고 지켜나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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