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들을 위해 우리들이 할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현대의학기술과 약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과도한 치료를 피한 채 주어진 남은 여명을 편안하게 지내도록 해드리는 것이 나은 것일까?

노인인구가 많아지고 그리고 각 종 암환자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이런 고민을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더욱이 말기 암환자나 노령으로 인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힘든 경우 강심제투여나 기타 호흡 보조장치 등을 달고 고통스러운 임종을 맞게 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 일까? 누구나 한 번은 꼭 맞이해야하는 것이 죽음이다. 의학적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보통 말기라함은 여명이 3개월에서 6개월 남은 경우를 말한다) 자연스러운 임종의 과정을 약물이나 호흡보조기구로 얼마를 연장시킨다는 것이 임종을 앞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게다가 이러한 특별한 치료를 할지 안 할지 의사표명도 한 적이 없고 할 수 도 없는 환자의 인격이나 존엄성은 무시되고 있다.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의 경우 품위있는 죽음에 대한 고민이 없다가 1976년 처음 자연사법(Natural Death Act)를 만들면서 리빙윌(living will)작성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사전의료지시서(Advanced directive)를 작성하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중반 죽음에 대한 주제가 부각되면서 일본후생성에서 말기의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여 발표하였다. 정부가 먼저 나서서 이러한 작업을 주도했다는 것이 이채롭다. 일본인들은 일본 후생성이 만든 것이라면 안심하고 따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본후생성은 기본적인 대원칙을 정해 주었고 일본의사회, 일본 구급의사회, 일본 의과대학등에서 각 상황에 따른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 만약 보건복지부에서 이런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서 발표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게다가 소극적 안락사(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에게서 인공호흡기등을 떼어 죽게 하는 행위)와 존엄사(환자의 뜻에 따라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지나친 진료나 약물투여등을 하지 않는 임종)와의 구분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언론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된다. 실제로 2002년 대한 의학회에서 임종환자의 연명치료중단에 관한 의료윤리지침을 발표했을 때였다.

존엄사에 대한 정확한 개념도 없는 기사로 마치 의사들이 소극적 안락사를 주장한 것처럼 매도해 버렸다. 의사들은 생명에 대한 윤리의식이 낮은 집단이고 돈 있는 환자만 연명치료를 받는 상황을 연출할 것이라고 이해하기 힘든 대립을 설정을 해 버렸다. 말기환자의 인격이나 고통에 관한 기사는 없었다. 단지 돈 때문에 이런 윤리지침을 만들었다고 진정 토론해야할 주제의 핵심을 흐트려 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최근 몇 몇 대학병원에서 자체 가이드 라인을 발표를 하였지만 아직 전체를 대표할 만한 가이드라인은 전무한 상태이고 단지 법원의 판결에 따른 해석만 있는 상태다.

자연스러운 죽음은 모든 인간이 거치는 과정이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듯이 자연스러운 생리과정을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졌으면 한다. 임종을 앞둔 부모님에게 불필요한 치료나 시술로 고통만 드리는 위장된 효도는 추방되었으면 한다. 모든 사람들이 진지한 토론과 고민을 함께 했으면 한다. 특히 정부는 이를 뒷짐 지고 있다가 누군가 나서면 교통정리나 하겠다는 안일한 자세에서 벗어나야한다. 정부가 먼저 나서서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정해 줄 필요가 있다. 임종을 앞둔 환자들에게는 편안하고 존엄한 임종을 맞도록 해주고 남은 자들에게는 불필요한 효도경쟁이나 죄책감에 고민하지 않도록 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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