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등급제 도’ 이대로 좋은가?

병원급 의료기관 간호인력 병상 당 2.4명 불과

기준등급 상회 의료비용 환자 직접부담 바람직

‘간호등급제’란 병원들을 병상 당 간호인력 수에 따라 7개 등급으로 분류하고, ‘입원환자 관리료’의 일정액을 등급에 따라 인센티브로 차등 지급하는 것이다. 즉, 6등급을 기준등급으로 해서 1등급에는 기준등급(6등급) 입원환자 관리료(2만7000~3만3000원)의 50~68%를 가산 지급하고, 7등급에는 5%를 감산 지급한다.

당초 간호등급제의 도입 취지는 간호인력을 많이 확보한 병원에 대해서 인센티브를 지급함으로써 병원들로 하여금 간호인력을 늘리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하여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더 많은 간호인력이 투입되어야 하는 바, 추가인력에 대한 원가는 보험재정에서 보상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논리는 간호인력의 공급이 충분할 경우에나 통할 수 있는 얘기다. 활동 간호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간호인력을 더 늘리려 해도 임금이 높고 근무여건이 양호한 일부 대형병원으로만 간호인력이 집중될 뿐 오히려 중소병원의 간호인력은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대학병원 간호사 수는 병상 당 6.2명임에 비해 병원급 의료기관의 간호사 수는 병상 당 2.4명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전국 병원이 의료법에 규정된 간호인력 정원(입원환자 2.5인 당 간호사 1명)을 충족시키려면 약 2만5000명의 간호사가 추가 공급되어야 하는 바, 이와 같은 상황 하에서 대학병원을 제치고 중소병원이 간호인력을 확보한다는 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보도에 의하면 전체병원의 80% 이상, 그리고 지방 중소병원의 대부분이 7등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영세한 농어촌 주민들이 낸 보험료로 대도시 부유층의 진료비를 지원해 주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대부분의 1~2등급 병원들은 대도시에 있는 대형병원들이며, 이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들도 대부분 대도시 부유층인데, 보험재정으로 이들의 입원료에 인센티브를 가산 지급한다는 것은 결국 농어민과 도시 영세민이 납부한 보험료로 소수의 부유층 입원진료비를 지원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농어촌 및 지방 중소도시에는 1등급은 고사하고 6등급(기준등급) 병원도 찾아보기 어려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어촌 주민들에게 규정대로 보험료를 납부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더군다나 보건의료노조에서는 ‘간호등급 1등급’을 금년도 임단협 요구안으로 내걸고 대학병원들을 압박하고 있으니 중소병원의 간호인력 확보는 더욱 어려워질 게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일종의 사회보험이다. 그러므로 모든 국민은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여 부과된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며, 그 대신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적정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사회보험 형태의 건강보험에서 제공되는 의료서비스는 ‘의학적 필요성과 효과성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비용 효과적’이어야 한다.

이것은 건강보험이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의학적으로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경제적으로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민영보험이라면 얼마든지 가입자의 요구에 따라 보험료를 달리 책정하고 서비스 수준도 차별화 할 수 있겠지만 건강보험에서는 가입자의 소득수준 및 보험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의료서비스 수준을 차등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물며 고급서비스를 보험재정으로 보상해 준다는 것은 사회보험이 해야 할 바가 아니다.

간호등급제도 마찬가지이다. 간호기준등급(6등급)을 ‘의학적으로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비용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간호인력 수준’이라고 정의한다면 기준등급을 초과하는 상위등급에 보험재정으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은 건강보험 원리에 맞지 않는다. 기준등급을 초과했다는 것은 건강보험에서 보상해야 할 적정 의료서비스 수준을 초과했다는 의미이며, 이러한 의료서비스까지 건강보험에서 보상하려면 보험재정이 무한정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강보험 재정을 간호등급 인센티브 지급에 사용하는 것은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 이것은 건강보험의 기본원리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정의에도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위해 많은 간호인력을 투입한 병원은 이에 대한 원가를 보상받을 수 없는 것인가?

적정수준(기준등급)을 상회하는 의료서비스에 대해서는 그 비용을 보험재정에서 부담하지 말고 환자가 직접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즉,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간호인력을 평가하여 정기적으로 병원별 간호등급을 발표하고, 병원에서는 이를 근거로 환자에게 ‘간호등급 차액’을 부과하면 된다. 이것은 1인실 입원환자가 6인실 환자보다 비싼 병실료를 내야 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로 간호등급 1등급 병원의 환자는 그만큼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받기 때문에 7등급 병원에 비해 비싼 서비스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그 대신 정부는 그간 간호등급 인센티브로 지급하던 보험재정을 중소병원의 간호사 인건비 지원에 돌려 7등급 병원들을 기준등급(6등급)으로 끌어 올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건강보험에서는 모든 국민들에게 최소한 기준등급의 간호서비스를 받도록 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연간 2000억 원에 달하는 인센티브 지급액을 중소병원 간호사 인건비 보조금으로 전환하여 간호사 1인당 월 50만원씩 지원한다면 총 3만여 명의 간호사 인건비를 지원할 수 있는 바, 이 정도면 중소병원의 간호인력 확보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보험으로서의 건강보험은 모든 국민들에게 일정수준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을 뿐, 기준을 초과하는 상급서비스까지 보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칫 가난한 사람들이 낸 보험료를 일부 부유층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각종 평가에 보험재정으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도 신중히 검토해 볼 일이다.

성익제

전 대한병원협회 사무총장

KOICA 아프간 의료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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