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년차로 접어들면서 책임 간호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전체를 조율하고 책임져야 하는 자리인 만큼 뭔가의 뿌듯함이 나를 더 자랑스럽게 하는 자리인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요즘 나는 참 자만하고 교만해 지는 거 같다. 간호사를 시작하면서 나의 비전과 나의 목표는 잊고 주어진 근무시간 내 무사히 일을 마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해 하며 지내고 있었다.

나의 삶 안에서 간호사를 하는 나는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지난 시간 동안 병원에서의 나의 생활을 돌아보며 몇 가지 적어보려 한다.

큰 것을 바라보고 병원에 입사하진 않았다. 병원에서 큰 획을 긋는 간호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바랬던 것은 나의 손길이 닿은 환자들에게 웃음이 생겨나고 치료의 희망을 가지고 회복되어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병동 근무로 발령 후 여러 가지 많은 업무를 배워야 했지만 가장 어려웠던 일 중 하나는 경구약과 주사약제를 자세히 이해하고 암기하는 것이었다.

각각의 용량, 효과, 부작용, 모양, 투여경로 등 모두 비슷비슷했고, 특히 경구약은 구별하기 어려웠다. 당시에는 여러 업무들을 한꺼번에 익혀야 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약제 학습을 미뤄뒀다.

‘이건 약사가 알아서 하겠지…’ 이런 생각으로 말이죠. 하지만 “이건 무슨 약이예요?”라고 환자가 질문했을 때 충분하지 못한 답변으로 얼굴이 붉어진 채 간호사실로 돌아와 약품편람 확인을 통해 그 약제가 그 환자에게 왜 투여 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주사제보다 경구약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어졌다. 투약 마지막 단계에서 다시 확인하고 약의 작용을 최대화하기 위해 어떤 준비과정이 필요한지 학습하는 것도 환자 치료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는 의사 처방을 확인할 때 꼭 약품편람을 열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작용부터 부작용, 용량, 약 모양, 색깔, 수가까지…. 하나하나가 모이다 보니 이제는 제법 약품편람을 보지 않고서도 무슨 약인지 설명할 수 있을 만큼이 되었다.

물론 아직도 모르는 약들은 참 많다. 지금은 환자가 묻기 전에 내가 먼저 추가되는 약이 있으면 내가 먼저 설명한다.

“이 약이 추가되었어요. 어제 이런 증상을 호소하셔서 오늘부터 주치의 선생님이 약을 추가하였습니다. 이 약은 이런 작용이 있고, 만약에 이런 부작용이 나타나면 꼭 말씀해주세요.”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을 때, 나한텐 별거 아니지만 병과 싸우고 있는 환자에겐 참으로 큰 희망으로 변한다. 간호사를 하면서 내가 먼저 대접받는 것 보다 내가 먼저 배려했을 때의 그 기쁨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나는 세상에서 아름답게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윤지희

여의도성모병원 간호사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