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의사회에 많은 관심도 갖고 ‘서울시의사회 학술이사’라는 직함도 갖고 있지만 정작 의협 중앙대의원을 해 본 적은 없다. 그러다보니 대의원총회를 어떻게 하는지 볼 기회도 관심도 없었는데, 이번 대의원 정기총회는 의사협회의 당면한 상황도 있고 해서 어떻게 진행이 될지 궁금해서 갔었다.

◇ 대의원·일반회원 ‘간극’ 확인= 전반적인 느낌은 대의원들의 정서와 일반 회원들의 정서 사이에는 일정 간극이 있어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대의원 전체의 성향을 파악하기도 불가능하고 총회 자리에 나온 회원들이 전체 일반 회원들의 정서를 반영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말이다.

참관자로서 당황했던 것은 감사께서 “감사 자료를 충분히 받아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사천리로 진행이 된다는 점과 결산 보고서 상의 문제를 지적하는데도 명쾌한 답변도 없이 진행이 된다는 점 등이다. 늘 그랬는지 몰라도 처음 대의원 총회를 본 필자로서는 뭔가가 석연치 않은 희한한 모습이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잠시 대의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대의원은 일반 회원을 대신해서 집행부가 성실하게 잘 하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역할이 아닐까?

그렇다면 오랜 기간 동안 대의원직을 유지하고 계신 분들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회원들의 의협 집행부에 대한 불신에 대해서 그들이 먼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총회는 일부 대의원들이 잘못을 지적하는데도 무사히 진행될 수 있고,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에 대한 견제 기능은 이미 상실했다면 대의원회가 굳이 많은 돈을 써 가면서 존재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회장의 와인관련 회계 부정 의혹 사건, 그 외에 수건의 일반 회원으로 부터의 고소고발 건. 이에 대한 대의원회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조정을 하든, 견제를 하든지 뭔가 조치를 취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책임지는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 대의원회 ‘민의 대변’ 아쉬워 = 이러한 행태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소명 의식이 없는 상당수 대의원들이 지속적으로 대의원을 할 수 있는 대의원회 구성에서 문제점을 찾아 볼 수 있다.

현재의 대의원 선정은 시도의사회장들이 실질적인 권한을 갖는데 회장 선거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원로들의 대의원 추천 요구를 시도회장들이 마다할 수 없고, 그렇게 얻은 자리다보니 회장 선거에서 다시 도와줄 수밖에 없는 연결고리가 형성된다. 그러니 이런 구조 속에서 개혁적 성향의 대의원 구성이라는 것은 원천적으로 기대하기가 어렵게 되어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의협은 회장이 있지만 대의원 조직이라는 변치 않는 거대 조직의 기세에 눌려 회장도 눈치를 봐야 하는 구조가 된다. 이는 전임 의협 집행부 시절의 모습에서도 볼 수가 있었고, 한편으로 생각하면 대의원회가 절차의 정당성을 잃어가면서 의협 회장 선거 방식을 간선제로 급하게 전환하려고 했던 근본적인 원인일 수도 있다.

한 마디로 그들만의 리그에서 통제되지 않는 세력을 인정하기 싫은 모습의 반려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의원 총회에서 일부 개혁적인 발언을 하는 대의원들도 있고, 현장의 분위기는 이들의 주장이 반영되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투표를 해 보면 역시나 기대와 반대로 결정된다.

앞으로 의협이 넘어야 할 산은 험준하다. 이 집행부가 남은 1년을 어떻게 보낼 지, 과연 의사회를 위해 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한 대의원회는 진정 본연의 임무인 민의를 잘 대변하는 조직으로 거듭 날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잘못을 지적해도 넘어가는 하나마나한 대의원 총회, 참으로 갑갑한 정기총회의 모습이다.

박종훈

고려의대 정형외과 교수

서울시의사회 학술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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