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중심병원, 전문인력 육성·정부 지원이 관건

정부, 의료계 규제 완화-의료수가 현실화 필요

병원 해외진출·외국환자 유치 지원책 병행돼야

연구중심대 연구전임교수제 도입 임상연구 강화해야

의과대학, 산학연 협력연구-맞춤형 의학교육 바람직

종합병원의 역할이 환자 진료를 넘어 새로운 의료기술 개발로 확대되면서 진료와 연구를 함께 병행하는 연구중심병원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작년 7월에 보건복지부장관이 국내 주요 병원장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한국 의료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연구중심병원 육성방안’에 대한 설명회를 가진적이 있다. 또 복지부가 금년 3월말까지 ‘연구중심병원 육성방안 기획연구’ 과제를 공모하여 여기서 선정된 육성방안을 토대로 금년 중 연구중심병원을 선정하여 2012년부터 대형병원의 연구기능을 활성화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상항에서 향후 연구중심병원의 활성화 방안에 대해 필자의 몇가지 소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는 법과 제도 및 재정적으로 병원의 연구 활성화를 적극 지원해 주어야 한다.

현재와 같이 건강보험수가가 낮은 진료환경에서는 임상교수들이 수많은 환자 진료에 억매여 연구할 시간이 없으므로 진료수가를 올려 환자 진료 부담을 줄이고 연구할 시간을 갖게 해야 한다. 또 정부는 연구중심병원의 수를 확대하고 충분한 재정지원을 해주어 새롭게 연구전임교수제도를 도입케 해주어야 세계수준의 경쟁력 있는 임상연구가 활성화 될 것이다.

현재 한국의 의료수준은 세계적이지만 지금까지 한국 의학과 의료가 발전해 온 과정을 보면 선진국의 의학지식과 기술, 고가의 의약품, 첨단 의료기기 등을 외국에서 도입해 발전했지, 순수 우리 원천 연구와 기술로 이룬 것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발전함에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본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 수준은 세계 10위권 이내고 국민소득은 2만 달러을 넘었으며, 정보기술(IT)과 자동차, 조선 및 원자력을 포함한 다른 과학기술 분야는 많은 발전을 하고 있는데, 우리의 의생명과학 연구기술 수준은 이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나라 연구중심병원의 육성을 위하여 법적, 제도적 지원을 해주려고 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정부에서 임상연구와 개발 성과를 이루는 병원에는 재정적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하니, 이에 부응하여 대학병원들도 세계수준인 현 의료기술을 연구로 접목시켜 선진화하겠다는 실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연구중심대학이 연구중심병원을 만든다.

아직도 우리 의학교육은 과거 산업화시대에 필요했던 ‘훌륭한 의사’ 양성의 형태에서 크게 못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의대와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의 공통 기본 목표는 훌륭한 의사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지식기반 정보화 시대에는 좋은 의사 양성에만 머물러서는 않되고, 세계수준의 의생명과학자와 의학관련 다양한 직업분야(의료정책 및 경영인, 정치인, 법의학자, 의료선교사, 환경의학자, 의학전문 언론인, 보건복지부 등 정부기관과 보건원과 식약청 등 정부 투자 기관, 제약회사 CEO 등)의 인재도 많이 양성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교육열이 제일 높고 자연과학 분야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하는 의과대학에서 세계수준의 다양한 인재들을 양성해야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는 것이고, 한국이 의학과 의료강국이 되지 않겠는가.

또한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한국의료의 심각한 위기를 의과대학 교수들이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여, 미래의 글로벌 리더를 많이 배출하기 위해서는 국가사회가 요구하는 맞춤형 의학교육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의료계의 상항을 보면 획일적인 임상 의사의 과다한 배출, 건강보험 재정의 열악성, 개원가와 병원간의 의료전달체계의 난맥상, 대형병원의 경쟁적 신·증설 등으로 일차의료기관은 날이 갈수록 붕괴되고 있다. 이러한 난국에서 하루속히 중·장기적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의료계는 수습할 수 없는 난관에 빠질 것이고, 그 피해는 의사는 물론,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의대는 실용적인 의학교육을 통하여 훌륭한 임상의사를 양성(진료중심대학)하고, 의전원은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전환해야 연구중심병원도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중심대학과 그 부속병원들은 연구전임교수제도를 폭넓게 도입하여 임상연구를 강화하고, MD-PhD 과정을 개설하여 미래의 우수한 의생명과학자를 많이 배출해야 세계수준의 의료선진국과 경쟁이 가능할 것이다.

미국은 이미 50여년전(1964년)에 하바드와 존스합킨스 의학대학원에서 MD-PhD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80여개 의대(전국 126개 의대)에서 1만5000여명의 의사과학자를 배출하였다. 현재 그들이 의과학 연구와 신약 및 첨단의료기기 개발 등을 주도해 왔고,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도 여러 명 배출되었다고 한다.

일본도 도쿄대, 교토대, 오사카대 등 9개 명문 대학(전국 80개 의대)이 10여년 전에 의과학대학원(graduate school of medical science)으로 전환하여(6년제 학사, 석사 통합과정) 전원 국가재정으로 장학금을 주어 매년 1000여명의 미래를 위한 의생명과학자를 배출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UCLA의대 교수로 산화질소(NO)가 혈관에 미치는 영향을 최초로 연구하여 비아그라 개발에 단초로 기여한 업적으로 1998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루이스 이그날로 교수(건국 의전원 석좌교수)가 작년에 건국대 의전원 학생들에게 ‘의과대학 교육에서 기초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특강 내용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어,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의사도 궁극적으로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 빨리 의사가 되는 것 보다 몇 년 늦더라도 경쟁력 있는 의사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국의 6년제(의예과 2년, 본과 4년) 의대교육체계에서는 처방과 수술을 기계적으로 익힐 수밖에 없다. 미국처럼 학부에서 기초과학을 4년간 전공한 후에 4년간 의학교육을 받아야 한다. 하바드나 UCLA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60% 이상이 학부과정에서 여름방학을 반납하고 기초과학 연구를 한다.”

현재 대학병원에서 수련중인 대부분의 전공의들이 대학원 과정을 병행하고 있어 전임제 대학원 학생이 없기 때문에, 임상연구 교수들은 연구를 지원해 주는 인력이 부족하여 병원의 연구 활성화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서 현재 운영하고 있는 것처럼, 수련이 끝난 일부 공보의 요원 전문의에게 군특례를 주어 대학병원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게 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부는 앞으로 충북 오송과 대구 신서 지역에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조성하여 바이오신약과 첨단의료기기 개발 등 의료관련 산업을 적극 육성하려 하고 있고, 삼성그룹도 최근에 인천 송도에 2조원을 투자하여 바이오시미러 등 바이오 신약을 개발한다고 발표하였다.

앞으로 의과대학도 이러한 상황 변화에 기여할 우수한 인재를 많이 양성하고, 산학연 협력연구(기초연구, 중개연구 및 임상연구)를 강화해야 연구중심병원이 활성화 될 것이다.

앞으로 의전원으로 남는 5개 대학만이라도 정부와 각 해당 대학교들이 제도적, 재정적으로 적극 지원해 주어 한국의학이 다양하게 특성화되어 세계화 되도록 해주기 바란다.

최근에 교육과학기술부는 의전원으로 남는 대학에는 그에 필요한 재정 지원과 MD-PhD 프로그램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고 하니 매우 다행한 일이다. 강조할 것은 의전원제도 도입 당시에 결정한대로 이 복합학위과정 학생중에서 병역 미필자에게는 병역특례를 주기 바란다. 다시 강조 하지만 연구중심대학이 수월성과 창의성에 역점을 두어 연구전임교수제도를 활성화하고 그들을 따라 연구의 길로 가는 후학들이 많이 나와야 세계를 선도하는 연구중심병원이 육성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셋째, 대학병원들은 규모의 확장을 지양하고 연구중심병원에 걸맞는 질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

한국 대학병원들은 국립·사립병원을 가릴 것 없이 경쟁적으로 병원 신·증설을 계속하고 있어 병상의 수요에 비해 공급이 과다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대형병원의 규모 팽창은 결과적으로 질적인 발전(진료수준, 연구업적, 인재양성)을 저해하여 국제적인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고, 한편으로는 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현상으로 개원가는 물론 중소병원들도 붕괴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대형병원 간에도 환자 유치 경쟁을 하는 ‘의료전쟁’이 벌어지고 있는것 같다. 이와 같이 대형병원들이 규모를 확장하면 목전에 닥친 어려운 경영난을 극복해야 하므로 인재양성이나 연구 활성화는 자연이 뒤로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대형병원들은 ‘박리다매’식으로 하루에 5천~1만 명의 외래환자를 진료해야 현상유지를 할 수 있으니 대형병원 환자쏠림 현상으로 중소병원들은 낮은 진료수가에 설상가상으로 외래 환자가 감소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한다. 의대 졸업생과 전문의들을 양성하여 배출하는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은 그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어야 그들도 병원에서 마음 놓고 수련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대형병원들도 전공의 확보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특히 개원가는 하루에 40~50명의 외래환자를 진료해도 현상유지를 할 수 없어 생존을 위한 길을 찾다보니 개원이 않되는 일부과는 지원자가 줄어 들고, 전공과의 벽이 날이 갈수록 문어지고 있는 참담한 실정이다.

또 한 가지 강조할 것은 최근에 국방의학전문대학원 신설을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은데, 이 제도는 도입하면 절대로 않된다. 이에 대한 전례는 일본 자위대에서 과거 수 십 년 전에 의과대학을 만들어 1년에 100명씩 군의관을 배출했는데, 군의료의 주어진 특성상 의과대학과 수련교육이 잘 않되어 비용 대비 효율성이 크게 떨어져 폐교해야 한다는 여론이 10여년 전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자위대의 선례를 조사해 보아 만일 투자 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다면 실패한 다른 나라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국방의학연구원 창설에 드는 수천억원의 비용을 현 연구중심의전원의 교육과 연구중심병원의 연구 활성화를 지원해 주고, 각 의전원에 군의관 양성 위탁교육을 확대하고, 수련교육은 각 임상과의 특성에 따라 군 통합병원과 민간 대학병원에서 이수하도록 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고 단기간에 성과를 높일 것으로 생각한다. 또 군병원의 진료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외과계열의 군의관을 본인들이 원하면 단기에서 장기복무 군의관으로 전환시켜 대우를 적절하게 해주고, 대학병원 교수들을 군의료기관에 위촉하는 것도 군의료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넷째, 의료의 산업화가 필요하다.

1980년 말에 전국민개보험제도가 도입되어 현재 모든 국민들은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쉽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 운영 과정에서 정부가 의료의 공공성만을 강조하여 의료수가 인상을 계속 억제함으로써 병원의 수익성이 낮아 의료서비스가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어, 앞으로 의료시장이 전면 개방될 때 우리나라 의료가 국제적 경쟁력이 낮은 것이 큰 문제로 대두되어 있다.

앞으로 머지않아 인천과 제주도 등 경제자유지역에 세계적인 브랜드를 가진 외국병원들이 선진의료기술과 우수한 경영능력을 갖고 들어올 때 경쟁할 수 있도록 빨리 대비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정부는 의료계에 대한 많은 규제를 대폭 완화해 주고 의료 산업이 선진화 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현재 원가에도 못 미치는 의료수가를 현실화해주고, 세계수준의 한국 의료기술을 첨단 임상연구로 접목시켜 해외 유수잡지에 우수한 연구논문을 많이 발표해야 국제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사립병원의 영리법인화와 민간보험제도의 도입을 점차 확대하여 수익성을 창출해서 좋은 연구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연구중심병원의 임상연구가 크게 활성화 될 것이다.

한편 연구중심병원을 더 많이 육성하여 지금까지 의료선진국에 의존해 왔던 자체 원천 의료기술연구, 바이오신약 및 첨단의료기기의 개발 등을 통하여 의료의 부가가치를 더 많이 높여야 하겠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가 국내 병원의 해외진출을 적극 지원해 주고, 의사들의 해외진출 장려, 의료관광을 통한 외국 환자의 국내 유치, 국내 환자의 외국 유출을 억제하는 시책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하겠다.

태국의 예를 보면 의료기술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으나 1년에 150여만 명의 해외 의료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고, 싱가폴도 인구는 500만 명이지만 매년 30여만 명의 동남아 환자를 유치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1년간 10여만 명의 외국 환자를 유치하는데 그쳤다고 한다. 앞으로 국제적인 경쟁력이 있는 대형병원 중심으로 국내에서만 서로 경쟁하지 말고, 해외에 많은 홍보를 하여 외국 환자를 유치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겠다.

맺음말

과거 산업화 시대에 획일화되어 있던 우리나라 의학교육제도를 의대와 의전원으로 이원화하여 진료중심의 의대에서는 유능한 임상의사를 계속해서 많이 배출하고, 연구중심의 의전원에서는 의사 이외에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창의성을 갖춘 의과학자와 의학 관련 여러 분야를 선도하는 전문가도 많이 배출해야 하겠다.

미래의 유망 과학기술분야인 의생명과학을 하루 속히 적극 육성하여 가까운 장래에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해야 하겠고, 연구중심병원을 적극 육성하여 선진 의료 산업화를 이루어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국가 신성장동력산업으로 육성해야 하겠다. 이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는 사회주의적 의료의 모든 규제를 하루속히 과감하게 풀어 의료가 선진화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고, 의학계와 의료계의 모든 지도자들도 과거의 단선적이고 획일적인 고정관념을 버리고 미래 지향적인 빠른 변화와 개혁을 통하여 한국이 ‘의학강국’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허 갑 범 원장

연세대 명예교수

의약평론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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