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규
고려대학교 내과

의약평론가

지난 정부 때의 일이다.
우리나라를 동북아 의료의 허브, 중심으로 만들겠다고 하였다.
정부차원의 사업단이 꾸려졌고 각 부처를 망라하는 TFT가 구성되었다. 다양한 심포지엄, 정책 발표, MOU가 잇달았고 국회에 관련법도 상정되었다.

외국기업들이 입주할 땅도 고르고 그들이 와서 살 아파트도 건설하였다.
5년 내내 요란스러웠지만 지금 그 곳에는 입주한 외국기업도 없고 분양 안 된 아파트와 건물만이 빈 땅을 지키고 있다.

유-헬스란 IT기술을 보건의료 분야에 접목해 언제 어디서나 이용 가능한 원격 의료 및 건강관리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만든 서비스를 말한다. 여기에는 환자 질병에 대한 원격진찰, 처방등과 같은 원격의료서비스와 일반인의 건강을 유지, 증진시키는 건강관리 서비스가 포함된다. 정부는 수 십 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시범사업을 하고 있고 여기에는 대형통신회사와 지자체, 병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IT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무엇보다 국민 대부분이 IT에 친숙하다는 것이 강점이다. 이론적으로는 실패할 수 없는 사업인 것이다.

정부가 유-헬스산업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IT산업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헬스는 IT산업의 블루오션이다. 정부는 이 사업 분야에서 5년 후 약 3조 천 억의 시장과 1만 7천 명의 신규 고용창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정부 내에서 이 사업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지식경제부이다. 지경부의 희망대로라면 유헬스와 관련된 핵심기기와 주변기기의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며 이를 운영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므로 하드웨어 산업뿐 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산업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복지부는 의료비 절감과 소외계층과 지역에 대한 의료서비스 확대를 희망하고 있으나 지식경제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얻는 이익이 그리 크지 않다. 복지부 입장에서는 궂은 일은 복지부가 하고 열매는 지경부가 가져가는 셈이다.

정부의 부푼 꿈에 비해 의사들의 관심은 뜻밖이다. 관심이 없다.
일부 대형병원이 정부의 연구비 때문에 이 사업에 시범적으로 참여하고는 있으나 병원 내에서조차도 연구자를 제외한 다른 의사들은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개원의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루하루가 어려운 개원가 현실에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표정이다.

유헬스사업에는 의사의 참여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대형병원이던 개원의던 의사들은 이 사업에 참여해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지난 정권 때 추진했던 동북아의료허브 구상이 실패한 이유와 비슷하다.
대형병원들에게 의료허브사업에 참여하라고만 하였지 그에 대한 혜택이나 보상은 없었다. 투자에 대한 리스크도 병원 책임이었다. 그렇다고 의료 수가를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의료사고를 정부가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의료사업인데도 사업의 주체가 복지부가 아닌 것도 비슷하다. 그 당시는 재경부가 나서고 복지부는 뒤치다꺼리를 하는 형태였다.

유헬스 사업의 성공 여부는 정책의 실천이 얼마나 의사와 복지부의 관점에서 실시되느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다. 복지부가 아닌 지경부가 나서고 있고 필요한 정책이니 의사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논리라면 지난 정권 때의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안타까운 것은 나라를 먹여 살릴 미래 산업들이 정부의 이러한 정책추진방법 때문에 또 다시 실패하지나 않을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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