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호
강원도 홍천군

남면보건지소

공보의로 첫 근무를 시작하게 됐을 때 환자 진료를 위해 필요한 간단한 기구, 펜라이트, 청진기 같은 것을 보건소에 부탁하니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었다.

일단 학생 때 사용했던 개인 물품으로 진료를 시작했다.
얼마 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보건소 2층 복도에 보건소 한방사업을 홍보하는 대형 PDP TV가 설치된 것을 보고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모습을 최근 국회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여당 국회의원들이 난투 끝에 통과시킨 2011년도 새해 예산안에서 영유아 예방접종 지원 사업 예산, 보육수당 지원금 같은 국민의 보건복지를 위한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여러 가지 다른 사업들이 우선시 된 결과였다.

이는 지난 7월 목포 영유아사망사건을 통해 확인된 보건의료기관 예방접종의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는 처사다.

오히려 애초에 지원키로 했던 30%도 매우 낮아 실질적으로 민간의료기관에서 안전한 예방접종이 실시될 수 있을까 의문시 됐는데 심지어 전혀 지원하지 않게 돼버려 보건소를 비롯한 공공의료기관에서 앞으로도 계속 위험한 줄타기 같은 예방접종이 행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저출산국가라고 위기를 강조하면서 아이 낳기를 장려하면서 정작 출산장려 지원예산을 줄여가는 정책을 선보이는 정부와 국회를 어떻게 이해해야할 지 난감하다.

라디오에서 국민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게 정부가 노력하고 있다는 보건복지부장관의 목소리가 실린 공익광고에 이어 보건복지관련 예산이 사상최저 수준이라는 뉴스를 접하니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우리나라에는 정녕 보건복지 전문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정부나 국회는 도로나 지역민원 해결 사업을 위해서는 몇 천 억의 예산을 편성한다.
누구를 위한 도로이고, 누구를 위한 시설인지 묻고 싶다.

모두 국민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정작 그것들을 건강하게 사용할 국민이 사라져버린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최근 경기도가 42억 원을 들여 만든 육교가 기능을 거의 못하고 방치돼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렇게 아깝게 낭비되는 돈을 보건복지를 위해 쓰지 않고 있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국민 보건복지를 위한 예산을 아깝게 여겨 삭감하는 것은 나라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존재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처사일 뿐이다.

여당과 정부는 물론 의사가 아닌 행정직 공무원이 보건소장이 돼 지역 보건사업을 실시하는 지자체들, 환자에 대한 적절한 진료가 이뤄지지 못하게 보험수가 규정을 만들어가고 있는 건보공단, 국민의 보건복지를 지킬 의무를 망각한 채 정부 꼭두각시가 되어버린 보건복지부에 묻고 싶다.

굶는 아이들을 위한 급식지원 예산을 없애고 안전한 예방접종대신 지금처럼 위험천만한 접종사업을 벌이며 보육수당을 없애는 나라에서 누가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려 하겠는가.

방향성도 없고 미래지향적이지도 못한 보건복지관련 정책들은 의료전문가가 아닌 보건복지 분야에서 떡하니 자리 하나를 차지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탁상행정’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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