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규
고려의대 내과교수

의약평론가

삼성만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뚜렷한 기업도 없다. 삼성의 기업 문화가 독특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상징성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해 삼성전자의 순이익이 10조라고 한다. 일본 전체 전자 회사들의 이익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액수이다. 올해는 15조에 이를 것 같다는 전망이다.

삼성의 행보가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삼성이 투자하는 분야가 우리나라 경제가 나아갈 분야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삼성은 모험을 감수하는 기업이라기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 그런 삼성이 한다면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는 것이 일반인들의 생각이다.

얼마 전 삼성이 향후 10년간 투자할 분야 5개를 발표하였다. 태양전지와 자동차전지, LED, 바이오제약 그리고 의료기기이다. 중점투자 5개 중 2개 분야가 의료와 관련된 것이다. 반가운 일이다. 그 동안 연구나 개발, 투자에서 소외되어 있던 의료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니 거는 기대 또한 클 수밖에 없다.

흥미 있는 것은 분야별 투자대비 예상 수익과 고용효과이다. 태양전지 분야는 8조를 투자해서 10조의 매출, 고용규모 1만 명으로 잡은 것에 비해 의료기기는 1조 2000억 투자에 매출 목표를 10조로 하고 있으며, 고용인원은 9500명으로 거의 1만 명에 가깝다. 삼성이 선정한 5개 부분의 투자규모 중 가장 적은 액수이면서도 매출 규모는 10조나 되며, 고용인원은 6조를 투자한 사업과 비슷하다. 그만큼 투자대비 이익이 크고 고용효과가 크다는 뜻이다.

의료산업은 병원산업만을 뜻하지 않는다. 병원을 짓고 운영하는 것은 의료산업의 일부일 뿐이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의료기기, 의료용품, 소모품, 시약, 약을 만드는 산업도 의료산업의 일환이며 줄기세포를 이용한 바이오산업도 의료산업과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는 전국민의료보험 이후 의료시장의 규모가 급격히 팽창하고 있는 나라로 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큰 시장이라고 한다.

필자가 강의하고 있는 과목 중 이공계생을 대상으로 하는 과목이 있다. 나는 그 시간에 중환자실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이야기 한다. 여기 있는 것 중 국산은 침대와 이불과 환자밖에 없을 것입니다(그러면 학생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중환자실에 환자가 입원하게 되면 달아야 하는 수많은 펌프와 모니터, 인공호흡기, 인공신장기와 그 밖의 의료기기 중 국산은 정말 거의 없다. 수술실에서 쓰는 수술도구나 진단목적으로 사용되는 CT, MRI, 혈관촬영기, 혈액검사기기도 대부분 수입품이다. 하다못해 바늘조차도 국산이 드물다. 그러니까 우리가 쓰는 의료비의 많은 부분이 외국으로 빠져 나가고 있는 셈이다. 처음에는 웃던 학생들도 여기까지 설명을 하면 표정이 심각해진다.

그래서 삼성의 결정이 우리의 이공계 학생들에게도 큰 희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낮은 의료수가에도 어쩔 수 없이 비싼 수입품을 써야만했던 의사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삼성의 선택에 거는 기대가 크다. ◈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