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규
고려의대 내과 교수

의약평론가

대학진학을 앞 둔 자녀가 있는 부모들에게 가장 큰 관심은 뭐니 해도 입시제도일 것이다. 대학 입시는 대학이 신입생을 뽑는 절차다. 따라서 대학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신입생을 뽑느냐는 사실 대학이 알아서 할 문제다. 대학입시는 대학의 건학이념이나 여건, 사회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가 있다. 대학이 신입생을 뽑는 것은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절차이지 다른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입시가 대학의 자율을 떠나고 교육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 더 나아가 정치문제가 된 것은 지난 정권들의 포퓰리즘 탓이 크다. 정치가 입시에 개입하기 전까지는 대학 입시는 글자 그대로 대학에서 신입생을 뽑는 절차였을 뿐이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권은 국민의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려는 목적이었는지 난데없이 대학입시자격시험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대학에 입학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국가가 주겠다는 것이다. 대학에 입학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입시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시험이 왜 필요한지도, 그리고 그런 일을 왜 대학 스스로가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이 말이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입시제도 중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곳이 의학계와 법학계이다. 법학계는 아예 법관이나 변호사가 되는 길을 뿌리째 바꾸어 놓았다. 사법시험을 없애고 3년제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학생들만 법관시험을 볼 수 있게 했다. 실무교육을 담당하던 사법연수원을 없애고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실무교육을 시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학생 중 상당수가 학부를 법과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법에 대한 기초지식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실무 교육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다. 그러나 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인접한 다른 인문학 분야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다. 즉 문과대학이나 경영대학이 법학 전문대학원으로 가려는 학생들의 통로는 아니라는 뜻이다.

의학전문대학원과 6년제 약대 문제가 요사이 이공계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과는 달리 치과대학의 대부분과 약 반 정도의 의과대학정원이 4년제 이공계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올해부터 시행되는 6년제 약대까지 감안하면 이에 해당되는 입학정원이 약 4천~5천 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의학전문대학원은 그래도 4년제 이공계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지만 약대는 이공계를 2년을 다니면 응시할 수 있다. 그야말로 ‘이공계 죽이기’라고 할 만하다.

6년제 약대나 8년제 의대가 단점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장점도 있나. 그러나 그러한 장점들이 우리나라 이공계를 큰 혼란에 빠트리고 과학기술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상쇄할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처음 의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도입할 때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이공계의 동의를 구했으나 그 당시 이공계에서는 파장이 이렇게 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늦었지만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이공계 스스로가 의식하여 입시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을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보다는 입시제도라는 포퓰리즘으로 이공계 죽이기에 열심인 정치권과 정부의 태도에 언제쯤 변화가 있으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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