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현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

지난 9일 대한의사협회 등 29개 단체가 기자회견을 통해 보건복지부 복수차관제 도입을 정부에 제안했다. ‘보건’과 ‘복지’ 두 부문 모두 역량과 기능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다.

본래 보건과 복지는 전혀 다른 분야다. 따라서 정부 부처도 별개로 운영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그간 보건과 복지를 함께 묶어 한 부서에서 다루어 왔다. 여기에는 보건의 핵심인 의료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의료를 복지로 인식하는 바람에 보건과 복지를 하나의 부문으로 간주해 왔다는 것이다.

의료는 복지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의료는 복지가 아니다. 의료는 서비스산업일 뿐이다. 의료서비스를 자력으로 구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정부가 대신 구입해주거나 보조해주는 것, 이게 복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서는 ‘의료=복지’라는 인식이 굳혀져 왔다. 이렇듯 의료를 복지와 동일시하는 인식이 뿌리를 내린 것은 그 동안 정부가 의료서비스 구입을 지원해주지 않고 ‘의료’를 복지체계에 얹어놓아 온 영향이 크다.

정부가 의료서비스를 자력으로 구입할 수 없는 사람을 지원하는 대신 의료를 복지체계에 얹어 놓은 배경은 두 가지로 유추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정부 스스로가 의료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다. 또 하나는,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배경이 무엇이든 정부는 재정을 고려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의료서비스를 자력으로 구입하기 어려운 사람들, 곧 사회의 보호가 필요한 취약계층을 직접 지원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경우 엄청난 재정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정부는 그것이 합리적이고 올바른 길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재정 부담을 안지 않거나 덜 부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의사와 의료기관을 강제로 징발(당연지정제)하여 국가통제체제에 편입시켜 놓고 가격을 통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온 것이다.

이는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국가가 시장에서 정당하게 대가를 지불하여 의료서비스를 구입하지 않고 가격통제를 통해 의료부문의 복지문제를 해결해 온 것은 의료기관의 사유재산을 침해한 것이다.

아무튼 이런 배경에서 보건과 복지를 하나의 정부부처가 다뤄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제라도 보건과 복지를 분리하는 것이 순리이며, 그러자면 보건부와 복지부로 나누어야 옳다.

보건과 복지를 하나의 부처에서 다루기에는 두 부문이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커졌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보건복지부를 둘로 나누어야 할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듯 복지예산은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비단 고령화 등으로 인한 인구 구성의 변화만이 아니라 삶의 질을 중시하는 사회, 문화적 기류, 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 증대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하여 복지에 대한 수요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보다는 훨씬 더 높은 전문성이 요구된다.

의료 역시 과거와는 전혀 다른 환경을 맞고 있다. 의료에 있어서 이제 국경은 그 의미를 거의 잃고 있다. 맞춤형 의료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를 잡아 나가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의료서비스가 단순히 환자를 진료하는 것을 넘어 이제 산업으로, 그것도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의료는 복지부가 관장할 게 아니라 경제부처에서 다뤄야 할 부문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추이에 따라가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는 보건부와 복지부로 나눌 필요가 있다. 그래야 폭주하는 행정수요를 감당하며 정책개발의 실효를 기할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시대적 추세나 요구, 현 정부의 정책방향에 비추어 볼 때 보건복지부를 두 개로 쪼개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의사협회 등이 복수차관제 도입을 제안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감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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