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규
고려의대 내과 교수

본지 객원논설위원

가끔 연구실에 들리는 제약회사의 영업사원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요새는 왜 안보이냐고 하니까 시국 때문에 그렇단다. 그들이 느끼는 시국은 심각한 모양이다. 정부나 회사에서 영업사원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체크하고 감시하니 찾아와도 할 말이 없고 할 일도 없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반은 퇴출될 것이라고 걱정이 태산이다. 할 일도 없고 할 말도 없는 사원을 데리고 있을 회사가 없다는 것을 심각하게 느끼는 모습이다.

얼마 전 언론에 세계 10대 제약회사의 순위가 발표된 일이 있다. 동계올림픽 순위는 아니라도 세계 10대 제약회사에 G7에 속하는 나라의 회사들이 하나 둘 씩은 들어가 있을 줄 알았다. 뜻밖에도 미국, 스위스, 불란서 영국회사들 뿐이였다. 내가 잘못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10위 이내에는 경제규모 2위의 일본 제약회사도, 경제 규모 3위의 독일회사도 없었다. 일본은 경제규모뿐만 아니라 제약시장도 세계 2위일 정도로 약의 국내 소비가 많은 나라이다. 자기 나라에서 쓰는 약만 해도 10위에는 들어갈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쓰는 약 중에는 일본에서 개발한 오리지널 약들이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일본에서 발행되는 간행물에서 산업부분별 일본과 한국의 기술력 차이를 본 일이 있다. 일본을 100으로 하였을 때 분야별로 한국이 일본의 몇 %정도 되는지를 표시한 것이다. 대부분의 분야에서 일본 기술 수준의 70~90% 정도 였었지만 유독 제약산업만 50%정도 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본에는 ‘후지사와’라는 꽤 규모가 큰 제약회사가 있다. 새롭고 혁신적인 약을 많이 만들어내는 굴지의 제약사이다. 20여 년 전 이 회사는 장기이식후에 나타나는 거부반응을 억제할 수 있는 혁신적인 약을 개발하였다. 당시 장기이식이 세계적으로 붐을 이루고 있을 때였으므로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린 셈이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못하였다. 미국 FDA와 유럽의 승인을 받는데 너무 많은 기간이 걸린 것이다. 그 사이 미국과 유럽에서는 다른 종류의 면역억제제를 개발하고 허가를 해버렸다. 후지사와는 어렵게 약을 개발하고 임상시험에 엄청난 돈을 쓴 보람도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진입장벽 때문에 신약은 개발하기도 어렵지만 획기적인 약이 개발된다하여도 시장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설사 진입을 한다하여도 시장을 확보하는 일이 어렵다. 획기적인 신약이 글로벌 신약이 되기 위해서는 글로벌 영업조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면 결국 판매권을 글로벌 영업조직이 있는 타회사에게 넘겨야 한다. 이것이 일본 제약업계의 약점이다.

신약에 들어가는 돈의 60~70%는 개발 후 임상시험에 들어간다고 한다. 개발에 들어가는 돈도 많은 액수이지만 개발 후 임상에 들어가는 돈은 더 큰 액수이다. 자본력이 없는 회사는 신약을 개발하고도 임상시험을 할 돈이 없어서 특허권을 넘긴다. 조금 큰 회사는 임상시험을 하고도 판매망이 없어서 판매권을 넘길 수 밖에 없다. 신약개발이 곧 글로벌신약으로 이어지고 대박이 날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이다.

마지막 장벽이 하나 더 있다.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약값의 결정에는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 자동차와 같은 공산품과는 달리 약은 시장논리가 먹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약을 개발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의료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비로서 그 약이 글로벌 신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입만 열면 제약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한다. 우리나라 제약업계를 하나로 다 합쳐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그래서 정부가 말하는 그 육성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더욱 궁금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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