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훈
고대 안암병원 QI위원장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고, 현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이기도 한 외국인 환자 유치 사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우리나라 의료에 대해 고민을 해 볼 기회가 많다. 정통의학인 현대의학은 이미 세계화되고 우리에게도 정착된 문화라고 생각을 하지만 사실 문화적 근원을 보면 우리의 것이 아닌 서구의 것이다 보니 기술적인 면에서는 그렇다 쳐도 문화적인 면에서도 과연 제대로 정착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외적인 면에서는 서구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시설과 의료기술을 자랑하지만 왠지 모르게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는 외국의 건설 기술을 도입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물을 지을 정도로 기술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걸핏하면 어처구니없는 안전사고로 인해 대형 참사가 벌어지는 현상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이미 의료 수준면에 있어서 선진국 어느 나라와도 겨룰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간 이식 분야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시설 면에서도 우리나라 대형병원들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병원 내의 기자재를 보면 더더욱 자랑할 만한데 최신 진단 장비인 MRI, PET/CT 등의 보급률과 로봇수술 기계, 치료 장비인 Cyber-knife 등의 구비 현황은 대단하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아니 우리나라 병원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JCI 인증을 받으면서 느낀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은 최신과 최고를 지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의료라는 것이 아주 사소한 부주의에 의해서도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과, 그 때문에 늘 평범한 의료 행위에서부터 질적인 관리를 꾸준히 실천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2000년대 이후 QI 활동이 소개되고 대형병원의 경우 담당자와 담당부서가 정해져 있지만 아쉽게도 병원 리더들의 무관심 속에 QI 활동은 이를 전공하는 소수의 그룹에 의해서 논의되고 있을 뿐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귀찮은 병원 평가를 대비하는 그저 그런 부서로 인식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의료의 질적인 부분에 대한 개선은 미미하고 의료사고는 끊임없이 발생되고 있다. 병원의 규모가 커지고 시설이 좋아지면 당연히 질 관리가 강화되어서 의료사고율도 상대적으로 줄어야 할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의료사고는 병상대비 증가할 것이라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추측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은 이 부분에 대한 통계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다.

QI학회는 학술대회다, 연수강좌다 부단한 노력은 하지만 여전히 소수의 전공자들과 병원 담당자들만의 장이고, 각 병원의 QI 담당자는 늘어나는 온갖 문서 수발에 치여서 일부 병원은 QI 직원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부서가 없거나 새로 직원을 채용해서 어렵다는 이유로 온갖 일들이 떠 넘겨지는 일도 다반사다.

QI는 글로벌 의료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에 있어서 세계 기준에 맞는 의료 안전관리 시스템의 향상을 위해서 병원의 리더들이 직접 나서서 관심 갖고 발전시켜야 하는 분야이다. 환자의 안전관리, 즉 의료의 질 관리가 선진국 수준으로 진입하지 않는 한 많은 외국인 환자를 받는 다는 것이 커다란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우리끼리만 살다보니 우리에게는 참다운 의료문화가 없었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70% 정도의 의료사고는 얼마든지 예방 가능한 일들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병원 로비에 값 비싼 커피를 파는 상점이 들어서고, 2층에는 대형 은행이 들어서는 것이 일반 환자들에게 뭐 그렇게 중요하겠는가? 정작 중요한 것은 작은 시술을 받더라도 안심하고 병원을 찾을 수 있는 안전한 의료문화의 정착이라는 것이다. 이제 의료사고는 그만, 규모 경쟁도 그만, QI 활동을 통한 질 관리에 모든 의료인들이 매진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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