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규 본지 객원논설위원 |
얼마 전 우리나라가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이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뀌었다고 자랑스럽게 보도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아이티 사태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보면 전에 비해 그리 달라진 것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책정된 예산이 1년에 100만 달러밖에 되지 않아 비슷한 경제규모인 다른 나라의 10분의 1에 불과한데다 해외 재난에 대한 지원제도나 시스템은 별로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아이티사태는 국제 재난에 대한 우리의 준비상황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하는 기회가 된 셈이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서도 아이티에 의료팀을 보냈다. 재난 발생 후 4일만에 팀을 구성하고 현지에 파견을 하였으니 민간병원으로서는 발빠른 대응을 한 셈이다. 이렇게 빠르게 의료팀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 몇 차례 해외에 재난 구호팀을 보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이들이 겪었던 일들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갈 사람을 모집하고 의약품과 지원물품을 선정하여 포장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현지에 가서 환자를 진료하고 구호활동을 벌이는 것도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짜 어려운 일은 현지까지 가는 일이라고 한다. 우선 짧은 시간 내에 해당국의 비자를 받아야하고, 비자를 받는다 하여도 해당국으로 가는 비행기편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직항편이 없어 대개 비행기를 갈아타야하는데 그 경우 가져간 약품이나 구호물품과 같은 화물의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화물의 양이 많기 때문에 추가요금을 내더라도 비행기에 잘 실어주려고 하지를 않는다. 또 깨지기 쉬운 주사약이나 장비들은 들고 탈 수 밖에 없는데 보안검색에서 통과가 어렵다. 그리고 들고 타는 짐의 양이 많아 규정상 실어 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나라 공항에서는 어떻게 잘 이야기를 해서 들고 탄다고 하여도 중간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통과국 세관에 아무리 설명을 하여도 소용이 없다. 들고 탄 의약품의 리스트며, 의료장비의 리스트를 보여주고 사정을 하여도 결국 연결편 비행기를 놓치고 마는 일이 생긴다고 한다. 또 화물로 부친 약품이나 구호장비가 연결편 비행기에 실리지 못하고 통과국 공항에서 마냥 잠자고 있는 일도 있다고 한다.
사실 이런 일들은 정부의 도움이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정부가 우리나라 공항과 세관, 해당국과 통과국의 세관과 공항에 협조를 요청하고 현지와 통과국의 우리나라 공관에 협조를 지시하지 않는 한 민간의료기관의 힘으로는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여태까지는 사안별로 민간의료기관의 요청에 의해 정부가 도와주었다면 이번 아이티사태를 계기로 민간의료기관이 이런 걱정을 하지 않고 피해국에 의료팀과 응급구조팀을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