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 교수의 원 포인트 JCI - 17

의료 사고 시에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환자와 보호자가 작성한 동의서다. 대개 환자와 그 가족들은 담당 스태프(staff)에게 구두로 수술에 대해 설명을 듣고 동의서 작성은 전공의들로부터 받는데 여기서 흔히 문제가 발생한다.

사고가 나면 환자와 가족들은 의료진으로부터 구체적인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분명 많은 설명을 한다고 했는데도 이런 상황이 흔히 발생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필자가 생각하는 원인은 이렇다. 실제로 부실하게 설명 한 경우도 많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의사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환자에게 설명을 한다는 것이다.

종종 무심코 의학 용어까지 사용하면서 설명을 하다보면 의사 자신은 만족할만한 설명을 했다고 느끼는데 환자와 가족들은 들을 당시에는 이해를 한 듯하지만 돌아서면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잊어버리게 된다. 의학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으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한번 설명으로 다 알아들으면 좋겠지만 의사가 아닌 다음에야 그러한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동의서에 서명을 할 때까지만 해도 잘되겠지 하는 마음과 다시 설명을 해 달라고 하기가 불편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데 정작 사고가 발생하면 문제가 된다. 어떤 경우는 서명한 동의서 자체를 부인하는 경우도 있다.

JCI는 성의 있게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으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자세한 항목으로 만들어서 체크하면서 설명을 하라고 한다. JCI 인증 이전의 동의서를 보면 의사들은 자신들이 설명을 했다는 사실을 인지해서인지 동의서 자체는 무척 부실하게 받곤 한다. 그림 한두 개 그려져 있고 감염, 사망 이런 단어 한두 개에 낙서 하듯이 밑줄 긋고 동그라미 치고 그게 전부다.

JCI가 원하는 동의서는 빈 공란에 의사들이 자유자재로 설명하는 그래서 의사의 스타일에 따라 설명이 달라질 수 있는 그런 동의서가 아니라, 수술 및 처치 동의서는 시술의 목적과 과정 그리고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과 차선책의 유무 등을 항목별로 정리해서 설명하라고 한다. 이러한 방식은 환자와 가족 그리고 의료진 모두에게 유용한 자료가 됨이 분명하다. 의료진의 입장에서도 간혹 빠뜨리는 설명의 항목이 체크리스트 형식으로 나열되어 있기 때문에 동의서 설명이 비교적 평준화될 수 있다.

문제는 동의서를 새로운 규정에 맞게 만들어 달라고 그렇게 하소연을 해도 움직이지 않는 의료진을 설득하는 일일 것이다. 꼼꼼한 동의서는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양식일 뿐 아니라 결국 의료진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주목하라고 설득해야 한다. 쉽지는 않을 일이다.

< 고대안암병원 QI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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