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쁠 때나 슬플 때나 소주 한잔 “카~”
2000년대 ‘저도주 경쟁’…16.9도 소주 선보여

아마 소주라는 말만큼 우리 국민의 정서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단어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오징어를 거칠게 찢어 먹어가며 “카~”하고 들이키는 한 잔의 소주는 오래 동안 보통 한국 사람들의 애환과 삶의 질곡을 대변해 주는 상징처럼 표현돼 왔다.
오늘날 이론의 여지없이 ‘한국의 국민주’로 매김되고 있는 소주는 고려 시대에 몽골족 원나라를 통해 들어 왔다는 것이 정설로 돼 있다. 그런데 사실 정확하게 살펴보면 당시의 소주와 지금 우리가 마시고 있는 소주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래 소주는 소줏고리라는 전통 단식증류기에 의해 만들어졌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종종 볼 수 있는 이 소줏고리는 비록 그 생산성은 현저히 떨어지지만 원재료의 향과 풍미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사실 근대화 이전의 우리나라 실정으로는 오래 동안 소줏고리 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기도 했다.

<사진 14-1>알코올 농도 25%의 진로 소주미니어처(50ml). 국내에 제대로 된 소주 미니어처가 등장한 것은 불과 2006년이다. 따라서 과거 25도 소주의 흔적을 미니어처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사진과 같은 일본에 수출되고 있는 제품의 미니어처를 통해서이다.
그러던 것이 일제 강점기 때 조금 사정이 달라졌다. 당시 일본에는 이미 서양식 연속증류기가 도입돼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고농도의 알코올을 대량 생산하는 방법이 널리 채택되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단순하고 복합미가 없는 저급품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연속증류기에 의해 생산된 알코올은 오히려 산뜻한 맛에 불순물이 없는 첨단 제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95% 고농도 알코올 주정에 물을 섞어 희석시킨 새로운 형태의 소주가 등장한 것도 바로 이런 배경에서 였다.
일제 강점 하에 있었던 우리나라도 자연히 그 새로운 추세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최근 인터넷에서 “한국소주의 원조는 일본이다”라고 주장하는 일본 네티즌들을 간혹 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치며 희석식 소주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보다 현실감 있게 다가서게 된 것은 1965년 삼학에서 만든 30도의 희석식 소주가 등장하면서 부터였다. 당시에는 만성적인 식량 부족 때문에 쌀을 원료로 하는 술의 제조를 1964년 12월 제정된 양곡관리법에 의해 정부 차원에서 금지했다.
이 때문에 쌀을 증류해서 만들어야 하는 증류식 소주를 만들 수 없게 됐다. 자연히 옥수수나 고구마를 사용해 만든 주정을 바탕으로 한 희석식 소주가 점점 대표적인 국민주로 자리 잡아 가게 된 것이다. 사실상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소주는 희석식 소주라는 등식이 성립되기 시작한 것이다.

30도 소주는 지금의 소주에 비해 월등히 도수가 높은데다 아무래도 그 맛도 거칠었기 때문에 제대로 안주도 없던 시절 한잔 쭉 들이 키고 나면 저절로 “카~”하는 소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실로 소주의 전성시대로 전국적으로 수백여 개의 소주공장에서 저마다 각각의 상표를 붙여 소주를 팔았다.
특히 ‘진로’ ‘명성’ ‘삼학’ 등 3대 브랜드는 1960∼1970년대 초반까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 시절 소주야 말로 생계유지조차 힘들었던 서민 애주가들에게 유일한 낙이었던 셈이다.

▲ <사진 14-2>소주 저도화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20도에 바싹 다가간 두 경쟁업체의 2006년 미니어처들(80ml). 사진 왼쪽은 20.1%의 참이슬이고 오른쪽은 20.0%의 처음처럼이다.

1973년에는 8년 만에 희석식 소주의 알코올 도수가 25도로 낮추어졌다. 이 25도 소주는 이후 오래 동안 소주의 표준 알코올 도수로 자리 잡아 당시의 많은 애주가들의 뇌리에 소주라고 하면 25도의 술로 자동적으로 인식되게 됐다(사진 14-1). 또 이 해에는 과거의 소주공장 난립에서 ‘1도(道) 1사(社)’ 제도가 시행되면서 소주 상표는 보해, 금복주, 대선, 선양, 경월 등 10가지로 줄게 됐다. 이 독특한 제도는 19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사라졌지만 아직까지도 적지 않은 심리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98년(일부 지방 소주를 기준으로 할 때 1996년이라는 주장도 있다.) 드디어 무려 25년 동안 소주 도수의 표준으로 인식되던 25도의 소주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경제성장과 함께 건강을 중시하게 된 사회풍조와 여성 음주인구의 증가 추세에 맞추어 23도 소주를 출시하게 된다.

▲<사진 14-3>마침내 20도를 밑도는 제품이 출시되었다. 사진 왼쪽은 19.8%의 ‘참이슬 후레쉬’이고 중앙과 오른쪽은 각각 16.9% 제품들인 ‘씨유’와 ‘좋은데이’다. 모두 80ml 미니어처들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 저도화 경쟁은 더욱 가속화됐다. 23도 소주가 출시 된지 얼마되지 않아 2000~2001년에 걸쳐 22도 소주가 등장하더니 2004년에는 21도까지 도수를 낮춘 제품들이 등장했다.
이윽고 2006년 2월에는 20도의 두산 ‘처음처럼’과 20.1도의 진로 ‘참이슬’이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20도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면서 저도화를 지속하더니(사진 14-2), 마침내 그 해 8월에는 20도 아래의 19.8도 ‘참이슬 후레쉬’가 전격적으로 출시되게 된다. 이후 대부분의 지방 소주업체도 이러한 추세에 가세해 심지어 16.9도 제품(대선소주 ‘씨유’, 무학 ‘좋은데이’)까지 선보이게 된다(사진 14-3).
소주의 저도화 바람은 애주가의 입장에서 전혀 상반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주 특유의 맛이 없어졌다” “소주로 애환을 달랠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는 부정적인 반응에서부터 “아무래도 건강에는 좋은 것 같다” “술이 약한 사람도 쉽게 어울릴 기회를 준다”는 등의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그러나 어찌됐던 싫으나 좋으나 앞으로 한동안은 우리와 함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 애물단지의 장래에 우리 모두 어느 정도의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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