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멸시하지 말라

일본 ‘치매’⇒‘인지증’으로 법률·행정 용어 개명
한국도 치매학회서 학계 중지 모아 명칭변경 해야

▲ 김일훈 박사
在美 내과 전문의, 의사평론가

선천적인 지능장애를 ‘Mongolism’이란 병명으로 우리 동양인을 바보 취급한 인종차별적인 명칭이 있었다(참조: 의학신문 2008년 4월 30일 필자칼럼 ‘천재적 종족은 몽골 혈통’).
그러다가 1959년 프랑스 연구가 Jerome Lejeune에 의해 질환의 원인규명이 되었으며, 태아의 인체세포에서 2개이어야 할 21번 염색체가 3개로 되어 염색체 과잉존재 때문에 발생한 ‘선천적 장애’임이 입증 되었다.
다운증후군은 ‘염색체이상에 기인한 선천적 장애’이고, 몽골계 동양인 용모의 유전과는 전혀 무관한 것임이 밝혀진 것이다.
근래 많은 동양인학자들이 유전학연구에 종사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서, 1961년 세계 각국 19명의 유전학자는 Mongolism이란 명칭은 그릇된 뜻(인종차별)을 내포하고 있음으로 마땅히 바꿔야한다고 의학전문지에 건의했으며, 의학계서도 ‘다운증후군’이란 명칭변경에 적극 찬성했다(참조: 1961년 4월 8일 Lancet. letters to the editor).

드디어 1965년 WHO(세계보건기구)는 몽골인민공화국의 요청을 수락하여 Mongolism이란 명칭을 의학용어에서 삭제하기로 정식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옛 명칭이 별명으로 언급되는 일이 아직도 흔하다.
다운증후군은 결코 몽골계나 동양인에게 많은 장애가 아니며,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인종에게도 동일한 비율(신생아 약 800인에 1인)로 나타나고, 나이 많은 임산부에게 더 자주 태어나는 장애이며, 선천성심장병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임신 수개월째에 양수의 염색체검사에 의해서 태아에서 다운증후군의 조기발견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일본서는 다운증후군이라 판명된 태아의 대부분은 임신중단 되고 있다고 한다.

이번 미국공화당 대통령후보 매케인이 지명한 부통령후보 ‘세라 페일린’의 자녀를 두고 뒷말이 많은 가운데, 4개월 된 막내아기가 ‘다운증후군’ 장애아라 한다.
페일린은 만년(44세)에 태어난 아기라서 다운증후군의 확률이 높은 대도 출산해서, 귀엽게 키우는 모습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과시한바 있다.
미국에 처음 와서 자주 눈에 뜨이는 일은 지능장애아동이 많으며, 그들을 캐어하는 부모와 사회의 정성이 지극하다는 사실이다.
한국서 육영사업을 하는 친지가 미국방문을 와서, 이러한 장애아 캐어 모습을 목격하고 “미국이 복 받은 이유를 알겠다”고 말한 일이 새삼 기억난다.

Dementia와 치매
다운증후군이라는 선천적인 지능장애와는 달리, 후천적으로 뇌의 기질(器質)장애에 의해 일단 정상적으로 발달한 지능이 저하한 상태를 우리는 ‘치매(癡呆)’라 부르며, 서양에서는 ‘Dementia’라 한다.
성인에게 발생하는 기억상실과 사고력 상실 또는 사고능력 감퇴에 대해선 여러 가지 명칭<*주: 기질적 뇌장애증후군(Organic brain syndrome), Senility(노인성 몽롱증), Idiot(정신박약자), Chronic brain syndrome(만성뇌장애증후군), 알츠하이머, 뇌혈관질환 등>이 있지만 한마디로 Dementia라 통칭하고 있다.

Dementia는 라틴어에 유래했으며, mentia(정신)와 de(부재)의 2개 낱말이 합쳐 ‘지적능력의 상실 또는 손상’을 의미하며, 이는 가장 적절한 용어인 동시에 ‘치매’ ‘정신박약자’ ‘몽롱증’처럼 환자를 비하하는 모욕적용어가 아니며 쉬운 학술적인 용어다. 그래서 서양사회에선 Dementia가 전통적으로 후천성치매를 통칭하는 일반 호칭이다.
Dementia는 한국과 일본서는 '어리석은 치(痴)'와 '어리석은 매(痴)'를 합쳐 치매(痴呆)라 해서 '바보'란 뜻으로 번역되고 있다.
그런데 근래 들어와서 이러한 모욕적인 명칭(치매)에 대한 감수성이나 이해능력도 없는 정신박약자의 인격도 우리가 보호할 줄 알아야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들도 인간적 또는 인권적인 면에서도 마땅히 모욕적인 호칭에서 벗어나야하기 때문이다.

일본서 ‘인지증’으로 개명
일본정부(후생노동성)는 ‘치매’라는 용어가 불쌍한 환자에 대해 모욕적이고 차별적이라고 문제 제기한 일본노인의학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2004년 6월에 의료복지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용어검토’에 착수했다.
그 결과 ‘치매’를 대치할 새로운 용어로 ‘인지증(認知症)’이 가장 적절하다고 결정했으며, 2004년 12월에 가서 정부차원에서 ‘인지증’이 법률용어 행정용어로 정식 변경공포 되었다.

일본정신의학회서도 ‘치매’ 대신 ‘인지증’을 정식 의학학술용어로 책정하여 각 의학회에 통보했었다. 그리하여 현재 일본국회를 통과한 법률안(개호보험법)에서도 ‘치매’ 대신 ‘인지증’이란 호칭을 사용하고, ‘인지증’을 “알츠하이머와 뇌혈관질환과 기타 요인에 기인한 뇌의 기질변화에 의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기억기능과 다른 여러 인지기능이 저하한 상태”라 정의하고 있다.
동양에서는 서양의학전래 이후 비로소 ‘치매’를 질병명칭으로 인정하게 되었을 것이나, 아직도 ‘치매’란 용어는 사람(바보)을 가리키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는 질병을 미워할지언정 사람을 멸시하거나 미워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서 현재 ‘치매’ 명칭변경을 바라는 분들이 많을 줄 알며, ‘대한치매학회’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여태껏 일본학회서 제정한 학술어를 그대로 사용해온 관습에 따라 ‘인지증’이라고 해도 좋으나, 한국학계의 중지를 모아 명칭변경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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