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케’ 양조용 재배된 술 빗는 쌀로 제조
지방 특산주 ‘지자케’ 맛보는 즐거움 놓치지 말아야

일본은 일찍이 서구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탓에 오늘날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는 위스키와 맥주를 만드는 등 실로 다양한 종류의 술들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술로는 역시 ‘일본주’(日本酒, nihon-shu) 또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케’(酒)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일본 청주’를 꼽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사케는 정확하게는 술 자체를 가르치는 말이다).
쌀을 원료로 만든 맑은 곡주인 일본주는 일본의 문화와 요리를 이야기 하는 데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일본이 자랑하는 발효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정종’이라고도 불리지만 이는 일제시대에 마사무네(正宗)라는 일본의 청주 상표가 많이 알려지면서 잘못 불리어지게 된 용어로, 이는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에서도 ‘진로’를 마치 소주라는 용어와 동일시하여 혼용한 것과 비슷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사케는 잘 도정된 쌀을 쌀누룩인 입국과 주모, 물과 함께 혼합하여 이를 발효시킨 후 여과시킨 알코올 농도 16도 정도의 곡주이다. 여기서 도정(또는 정미)이란 현미의 바깥쪽을 깎아 백미를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쌀에서 술의 원료가 되는 전분(starch)은 쌀 중심부에 있으며, 바깥쪽에는 단백질, 회분, 지질 등 양조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맛을 떨어뜨리는 성분들이 주로 있어 이를 많이 깎아낼수록 맛좋은 술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도정 방법은 양조기술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고급 일본주 술병의 상표를 보면 흔히 ‘정미보합(精米步合)’이라는 표시가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도정의 정도 즉, 도정하고 남은 쌀의 양을 표시하는 수치다. 예를 들면 30%의 정미보합이라면 쌀의 바깥쪽 70%를 깎아내고 안쪽 30% 만이 남아있다는 의미가 된다.

일본주를 만드는 데에는 일반적인 쌀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양조용으로 특별히 재배된 술 빗는 쌀로 만드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이 술쌀들은 쌀알이 무척 큰 품종인데 일본에는 약 65종의 양조용 쌀이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야마다니시키(山田錦), 고햐꾸만고쿠(五白万石) 등이 유명하여 이들을 사용하였을 때는 상표에 특별히 이를 표시하기도 할 정도다. 사케에는 나름대로 특유의 체계적인 등급체재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만 하면 일본 청주를 마시는 즐거움을 배가할 수 있다.
먼저 일본 청주의 약 80%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술은 보통주(普通酒)라고 불리는 종류다. 보통주는 쌀로 만든 청주 원액에 증류 알코올과 물을 다량 혼합하여 값싸게 만든 대중적인 제품으로 포도당 등의 당분과 산미료, 화학조미료 등을 첨가하기도 한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식량 부족 때문에 일본 정부에 의해 장려된 제조방법이 지금까지 남아오게 된 것이다. 보통주는 제품에 따라 품질의 차이가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뒷맛에서 강한 알코올기가 느껴지는 등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주를 진정으로 즐기고 그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전체 사케의 20% 정도에 해당되는 이른바 ‘특정명칭주’(特定名稱酒)를 마셔 보아야 한다. 이 특별주들은 도정의 정도와 순미(純米) 사용 여부에 따라 최상급의 ①대음양주(大吟釀酒; 다이긴죠슈) 및 순미대음양주(純米大吟釀酒; 쥰마이다이긴죠슈), 중간급의 ②음양주(吟釀酒; 긴죠슈) 및 순미음양주(純米吟釀酒; 쥰마이긴죠슈) 그리고 ③순미주(純米酒; 쥰마이슈)와 본양조주(本釀造酒; 혼죠조슈)의 3 등급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대음양주와 순미대음양주는 가장 도정을 많이 한 것으로 적어도 쌀의 50% 이상을 깎아 낸 소위 5분도 쌀을 사용하는 최상급 제품이다. 50%라는 도정의 기준은 그러나 최소한의 기준으로 많은 경우 도정을 더 많이 하여 65%까지 바깥쪽을 깎아 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대음양주의 경우 도정 과정에 정밀한 기술과 함께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대음양주와 순미대음양주의 차이는 후자의 경우엔 순수한 쌀만을 사용하여 양조한 반면 전자는 약간의 증류 알코올을 혼합했다는 점이 다르다. 대음양주와 같은 특정명칭주에서의 증류 알코올 혼합은 보통주에서의 경비 절감용 목적과는 달리 좀 더 가벼우면서 맛의 풍미를 더하기 위해 양조 마지막 단계에 매우 적은 양을 첨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순미대음양주를 좋아하느냐 아니면 그냥 대음양주를 좋아하느냐는 개인적인 선호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특정명칭주의 두 번째 등급인 음양주(吟釀酒, 긴죠슈)는 규정상 6분도 이하로 깎아 낸 쌀을 원료로 사용한다. 이는 적어도 쌀의 40% 이상을 깎아내고 나머지 60% 이하로 술을 만든다는 뜻이 된다. 대음양주에서와 마찬가지로 순 쌀만을 원료로 사용하였을 때는 역시 순미란 용어를 첨가하여 순미음양주로 따로 표시하게 된다. 사케의 최고급품인 음양주와 대음양주 등급의 제품들은 모두 합쳐서 전체 일본주 중에서 불과 6%에 지나지 않는다.
특정명칭주의 마지막 등급으로 순미주(純米酒, 쥰마이슈)와 본양조주가 있다. 순미주는 과거의 규정에는 적어도 30% 이상의 도정을 거친 7분도 이하의 쌀을 사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규정이 바뀌어 의무 기준은 없애고 대신 도정의 정도를 정확하게 상표에 표시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이 등급에서도 역시 순 쌀로 만든 술은 순미주로 부르고, 그렇지 않은 제품은 본양조주(本釀造酒, 혼죠조슈)로 부르고 있다.
이상과 같은 사케의 공식 등급 이외에도 사케를 한층 더 즐기기 위해서 꼭 알아두어야 할 몇 가지 종류들이 있다.

먼저 ‘생주’(生酒; 나마자케)라는 것이 있다. 이는 신선한 술맛을 유지하기위해 저온살균 과정을 생략한 제품을 말한다. 저온살균은 세균감염 방지와 바람직하지 못한 효소의 활동을 중단시킬 목적으로 시행하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술을 만든 직후에 한번 시행하고, 이후 일정 기간 저장 숙성을 시킨 뒤 후 출하를 위해 병에 넣을 때 한 번 더 시행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들을 생략한 생주는 쉽게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출하 후 항상 냉장 보관을 하여야 한다. 최근에는 이렇게 보관이 까다로운 생주에 대한 일종의 절충으로 저장 숙성전의 저온살균 과정은 생략하나 병입 시에는 저온살균 한 제품을 ‘생저장주’(生貯藏酒)라는 상표로 출하하기도 한다.

또 ‘원주’(原酒; 겐슈)라고 표시한 제품들도 있다. 일반적인 청주가 저장 후 출하하기 전에 물을 혼합하여 원래 20% 정도의 알코올 농도를 15~16% 정도로 감소시키는데 비해 원주는 20% 정도의 원액 그대로 출하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독특한 일본주로 ‘니코리자케’(濁り酒; 니고리자케)라는 것이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막걸리와 같은 술로서, 사케를 만드는 마지막 단계에서 의도적으로 여과를 시키지 않고 술의 비발효 찌끼기(술지끼미)를 그대로 남겨 둔 것을 말한다. 단맛이 비교적 강하다.

또 고급품 중에서 종종 ‘고주’(古酒)라는 상표를 볼 수가 있다. 이는 양조 후 맛을 부드럽게 하기위해 저온에서 보통 6개월 정도 숙성시키는 일반적인 제품들에 비해 수년 또는 10년 이상 숙성 시킨 제품을 말한다.
일본주 회사에는 일본 전국을 대상으로 많은 제품들을 대량 생산하는 큰 회사도 여럿 있지만 무엇보다도 각 지방마다 특색 있는 맛을 선보이는 수많은 작은 양조회사들이 사케의 다양한 풍미를 자랑하고 있다. 이들이 만드는 지방 특산주들을 ‘지주’(地酒; 지자케)라고 하는데 애주가라면 일본 어느 지방에 가던 그 지역 특유의 ‘지자케’를 맛보는 즐거움을 놓치기가 힘들다.

▲ 5-1
▲5-2

일본 청주 미니어처는 일본에서도 그렇게 많이 볼 수 없다. 알코올 도수가 낮아 장기 보관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이외에도 사케를 생산하는 회사가 대부분 소규모인 것과도 어느 정도는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첫 번째 사진의 미니어처(50ml, 16%)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월계관 제품으로 본양조주 등급이다(그림 5-1). 그 다음 사진의 미니어처들은 보통주로서 모두 100ml 제품들이다(그림 5-2). 보통주에는 흔히 본 제품들에서와 같이 특선(特選), 상선(上選), 가선(佳選) 등의 표현들을 사용하는데 이는 아무런 법적 규정이 없는 회사 임의의 표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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