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평론가 수필]

- 이정균<이정균내과의원장>

"날씨 추워 즐거운 지방, 찬바람 눈보라 속에
통나무 덕장에는 줄줄이 목을 매고 늘어진
황태,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
덜그덕 덜그덕…… 황금 황태가 몸을 비비며
황금빛 향기가 익어간다."

온천지가 눈, 눈이 부시다.

맑은 날씨, 푸른 하늘, 밝은 햇살에 비추어진 눈은 푸른 하늘을 닮았다. 하늘색에 물들어 파르스름한 색깔을 발산하는 밝은 눈은 백색능선의 ‘눈시린 감동’이었다.

하늘은 감청색, 솜이불처럼 두껍게 덮인 능선에는 외로운 나목(裸木)이 눈부신 설화를 안은 채, 굳건히 서 있다.

대자연의 변신 앞에 인간은 시름을 잊고, 동심의 세계를 넘나들며 자연이 주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 하얀 여백의 설원에서 웃으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그 소리는 바람소리에 묻혀 버린다.

잿빛 닮은 겨울, 겨울산은 수묵의 파노라마다.

겨울나무는 그 나뭇잎을 곱고 곱게 물감 드려 자신의 발아래 내려놓고 쉬고 서 있다. 겨울나무는 통통하고 기다란 꽃눈, 길쭉하고 자그마한 잎눈에게 튼튼하고 두꺼운 외투 입혀 혹독한 겨울을 넘긴다.

눈벌판의 눈은 공기층을 많이 지녀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 아우성을 치면서 자연을 치장하고 있다.

겨울 땅속의 소리는 고향의 소리다. 봄을 기다리는…….

눈 덮인 뒷산에선 눈보라 소리 요란하다. 그곳에는 리얼하고, 야생적인 생태환경의 감동을 읽을 수 있게 하는 곳이요 소리다.

잎 떨어진 가지 사이로 눈가루가 바람에 흩날리면 겨울 한복판이다.

얼음 깨지는 소리, 냇가에서 들리면 봄이 멀지 않았다는 소식이다.

귀를 에는 하늬바람, 동장군이 목덜미를 파고들면 뜨끈뜨끈 고향집 안방 아랫목 생각이 간절하고 아궁이 장작불에 무쇠솥(가마솥) 쌔액 김 뿜어내며 끓는 소리가 생각나고, 윤이 나도록 반들반들한 가마솥을 물행주로 닦아주시면서 아침밥을 지으시던 어머니 생각이 간절해진다.

한국인의 구들은 열을 저장하여 방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축열(蓄熱) 바닥식 난방이다. 좌식생활에 길들은 한국인은 신을 벗고 방에 들어가면 더운 기운이 발바닥에 닿으니 가장 이상적 난방의 원칙이다.

머리 차갑고 발 따뜻하니 ‘두한족열(頭寒足熱)’이라. 구들장에 누우면 피가 잘 돌아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고 “구들장이 펄펄 끓는다” 그게 바로 찜질방 효과라 서양사람들 난방은 뜨거운 공기 위로 가고 차가운 공기 아래쪽으로 가게 되니 두열족한(頭熱足寒)이다.

잘 먹고 잘산다. 한국식 난방이 “등 뜨습고 배부르다” 그것이 바로 참살이 웰빙시대 최고 난방법이 아니겠는가.

가마솥 솥뚜껑의 무게는 솥 전체 무게의 ⅓에 달하고 차가운 행주로 닦는 것은 뚜껑내부에 서린 수증기가 흘러 내려 뚜껑과 솥 사이의 틈을 막아주는 것이며, 수증기가 새는 것을 막아 내부압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니 어머니들의 생활지식이 얼마나 과학적이었는가.

시골 농촌에서는 소는 생구(生口)였다. 같은 식구다. 농사일꾼이었다.

쇠죽 끓이는 일은 할아버지 아르바이트, 마른 콩깎지 따다딱 딱딱 소리 쇠죽 끓는 소리 외양간 황소 여물통 어그적 어그적 여물 먹는 소리는 겨울 농촌의 농한기 아침풍경이었다.

앞마당과 덤불 울타리에서는 참새 떼가 지저귀고, 참죽나무와 오동나무에서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을 기대해보면서…….

사랑방에서는 집안 큰 어른의 잔기침소리, 화롯불에 담뱃대 터는 소리는 아직도 자고 있느냐 이놈들! 호령하시는 할아버지 분부 시었다.

지금으로부터 58년전 1948년 명태를 가득 실은 트럭이 대관령에 내린 큰 눈에 막혀 고립되었다 한다.

이 소식은 우연히 서울의 스키어들에게 알려지고 한국 스키의 발상지가 된 ‘하늘아래 첫 동네’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황계마을의 동네 야산은 썰매장 고을이 되었다.

경북포항시, 영덕군과 울진군에서는 과메기와 대게가 많이 잡힌다.

황태마을 원조는 대관령 서쪽편 용평스키장 입구 횡계리의 송천주변이다. 진부령 아래쪽 용대리보다 먼저 생긴 곳이라 한다.

겨울밤 영하 10℃이하 매서운 추위, 겨울철 눈보라, 청정한 봄바람 속에 말리는 명태가 황태다. 낮이 되면 햇볕에 녹는다. 녹았다 얼었다 반복하면 황금색 황태로 변신한다. 횡계리 개천따라 펼쳐진 구릉지대는 황태밭으로 변한다. 황태가 말라 싸리나무로 코를 꿰는 일을 ‘관태’라 부르며 상품화된 제품이다. 날이 추워 하얗게 된 백태.

날씨가 온난해서 따뜻한 기후에 검게 변한 먹태, 몸둥이 잘린 파태, 머리가 없어진 무두태 등이 있다.

덕장에 매달린 황태들이 제몸을 차고 매서운 겨울에 장작개비처럼 얼어서 부딪치는 소리는 또하나 횡계리의 자랑이다. 덜그덕 덜그덕 명태장단은 대관령의 또다른 풍경이다.

해발 700m 대관령고원 아름다운 눈마을엔 황태구이와 황태국이 나그네의 입맛을 돋군다.

횡계리 맛집에서는 오징어 불고기 오삼불고기(오징어, 삼겹살)가 제철맞아 단골식당 인기메뉴다. 대관령 한우는 평창 브랜드다. 소고기는 숯불에 구어야 맛이다. ‘숯불구이 맛’ 숯불에 은근히 익어 숯향기 밴 대관령 암소의 ‘쫀득 고소 단백한 고기맛’ 어찌 잊으랴.

그 맛은 고랭지 배추김치, 콩비지찌개, 저온창고에 보관했던 무공해 날배추, 가자미 식혜, 우리콩 된장뚝배기에 구수한 된장찌개는 푸짐한 지방인심이 가득 담긴 맛있는 요리다.

대관령에 가로 막혀 산을 넘지 못한 잿빛구름은 눈보라를 또 뿌린다.

바람소리는 비명처럼 앙칼지다. 날씨 추워 즐거운 지방, 찬바람 눈보라 속에 통나무 덕장에는 줄줄이 목을 매고 늘어진 황태,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 덜그덕 덜그덕…… 황금 황태가 몸을 비비며 황금빛 향기가 익어간다.

새해, 순백의 설원처럼 환한 세상이 펼쳐지기를 기원하면서 소담한 희망의 발자국 또박또박 새기며 눈길을 걸어간다. 뽀드득 뽀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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