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규 교수
- 고려의대 신장내과

- 의사평론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아니었다.

 새해 초에는 의료계에 뭣 좀 좋은 일이 있으려나 기대하고 의료전문지를 살펴보았더니 ‘씨티즌’으로 불리우는 복지부장관이 의료계의 신년하례식에 관행을 깨고 이례적(?)으로 불참을 하셨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바쁘셔서 못 오셨단다. 하긴 나 같은 사람도 하는 일 없이 바쁜데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참석하지 못하여 미안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차관이라도 참석을 하였겠지만, 언론들이 고의적(?)으로 그 후의 내용은 실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불량식품’으로 분류되는 언론에 신상이 공개되거나 공공의 적 수준으로 평가되는 의료계와 가깝다고 알려지는 것이 현 정권하에서는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그 분들은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다른 신문을 들추어 보았다. 심평원의 막가파식 약가인하소식이 보였다. 약가인하 폭이 제약회사에 따라서 그리고 약에 따라 다른 모양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제약회사의 반발이 거세니까 따로 따로 만나서 각개 격파를 하고 있다고 한다. 좋게 말하면 의견수렴이고, 나쁘게 말하면 협박이다. 의견수렴이든 협박이든 더 힘센 놈이 이기는 법이니 인하폭이 일정하지 않은 모양이다. 말하자면 원칙이 없다는 뜻이다. 원칙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심평원식의 원칙에는 이제 질려서 신물이 날 지경이다. 그러자니 심평원에 계신 분들이 작년 연말에 얼마나 바쁘셨을지는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회사의 숨통을 잡고 있는 약가인하 협상에서 자유스러울 제약회사는 없기 때문이다. 명줄이 붙어 있으려면 심평원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제약회사에서 약가협상을 담당하는 부서의 기본 업무에 속한다.

 또 다른 소식도 있다. 노동부가 3차 병원을 강제로 산재보험 진료기관으로 지정하려고 한다는 소식이다. 산재보험은 수가가 싸고, 특진이 안 되며, 무엇보다 장기입원환자가 많아서 3차 병원에서는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강제로 지정을 한단다. 강제로 지정하기보다는 수가를 현실화하고, 특진을 인정하며, 장기입원환자의 강제퇴원조치 같은 제도의 보완이 있으면 될 일을, 싫다고 하는데도 왜 그리 강제로 밀어붙이는지 모르겠다. 적절한 비유가 될는지 모르지만, 성폭행을 하고도 ‘나만 재미를 봤느냐, 너도 재미를 보지 않았느냐(?)’고 우기는 것과 뭐가 다른지. 싫다면 하지를 말아야지 무엇이든지 힘으로 밀어붙이면 되는지 아는 이번 정권의 속성은 어쩌면 그렇게 염치를 모르는지 모르겠다.

 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의 모 의원은 진료비 계산서를 발급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리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한다. 그 분이 진료비 계산서를 발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병의원의 탈세 우려 때문인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전국민의료보험을 실시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모든 의료비는 심평원과 공단을 거쳐 자동적으로 국세청에 신고되고 있다. 우리나라 어떤 업종이든 모든 매출이 자동적으로 국세청에 신고되는 업종이 병의원 말고 또 있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그 분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법안을 발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우리나라 현실이고, 더더군다나 그 분은 약사출신으로 시민단체가 추천한 전국구 의원이라는 소식이다.

 그런 면에서 인권위의 결정도 별로 인권적(?)이지 못하다. 보건소장을 의사로 임명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보건소의 업무 특성이 국민건강과 관련이 있는 일이므로 그 일에 적당한 사람을 써야한다는 취지다. 그런데 보건소장을 의사가 아닌 사람으로 쓰면 국민들의 인권이 더 신장되는 모양이다. 인권뿐만이 아니라 생존권마저도 죽어가고 있는 북한주민에 대해서는 수개월간의 토론 끝에 무혐의판정을 내린 인권위를 보면서 그들이 생각하는 인권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소신’과 ‘독선’은 종이 한 장의 차이이고,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소신인지 독선인지는 자신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하면 소신이고 남이 하면 독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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