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대법원 판결은 1997년과 동일]

미국 '존엄사 지지…안락사는 반대'
연방대법원 판결은 법리 판단에 불과
한국언론 "美안락사 지지" 논조는 비약적

▲ 김일훈 박사
- 在美 내과 전문의

- 의사평론가

 지난 2006년 1월 17일 미국연방대법원은 "연방법무부가 말기불치병환자들에게 안락사를 도우는 오리건州 의사들을 처벌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그 이유는 "의료문제에 대한 규제는 각주에서 독자적으로 결정할 일이며 연방정부에서 개입할 성질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원래 부시행정부의 대표적 보수정객 Ashcroft 법무장관이 연방정부의 CSA(Controlled Substance Act. 통제약품법안)을 남용하여 오리건안락사를 단속하려고 시작한 소송이었으나, "CSA는 Ashcroft에게 그러한 비상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법률해석을 한 것이 이번 판결문이다.

 한 가지 특기할 일은 행정부 아닌 입법부에서 법안(CSA)개정을 통해서 행정부에게 단속권한을 부여할 길은 열려있지만, AMA와 의사들이 반대함으로서 이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다음 항목 참조).

 안락사에 대한 이번 미국대법원판결에 대해 한국 언론은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사실과 상반된 비약적인 표현으로 독자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듯하니 유감이었다.

 △ 대법원, 안락사 간접지지 △ 미국도 안락사 허용 움직임 △ 품위 있게 죽을 권리 논의할 때

 이처럼 한국 언론에 나타난 미국대법원견해가 안락사인정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는 듯 그리고 미국서도 네덜란드처럼 안락사무드가 무르익어가는 듯 한 느낌을 주는 과장된 표현이라는 점에서, 이를 바로잡기 위한 추가설명을 필자가 감히 해보고자 한다.

 2002년 대한의학회가 연명의료중단(존엄사)허용을 포함한 의사윤리지침을 발표했을 당시 여기대한 국민의 이해부족 때문에 사회와 종교계에서 황당무계할 정도(*주 1)의 반발과 언론계의 오보로 소란했던 기억이 새롭다.

 < *주 1 : 기독교 예를 들어 천주교를 비롯한 세계기독교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존엄사(연명의료중단. 또는 소극적 안락사)를 찬성하고 있는 터인데, 한국기독교대표자는 성명에서 "안락사는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무조건 반대다"고 했다.

 바른말 잘하기로 유명한 K목사는 "독서 않는 한국인이 많으며 이런 경향은 특히 기독교인에게 심하다"고 평한바 있는데 실감나는 말이다.

 참조 : 필자의 저서 '안락사와 존엄사'(의학신문사. 2002년), 그리고 2001~2002년도 의협신문의 필자칼럼과 본지 필자시리즈에 안락사에 관한 여러 글이 게재됐음. >

 그러나 이번 2006년 언론보도는 판결문내용을 게재해서 논고의 취지를 명시했으니, 진실을 제대로 파악한 독자도 있을 줄 믿는다.

■ 오리건안락사와 1997년도 대법원판결

 아시다시피 오리건州는 미국서 유일하게 적극적 안락사, 즉 소생가능성이 없는 말기환자의 원에 따라 '의사의 자살방조' (Physician-assisted suicide. PAS라 약칭)가 허용되고 있는 州이다.

 1994년 오리건의 주민투표에 의해서 통과된 다음 법적 논란을 거쳐 1997년 세계최초로 안락사법안 DWDA(Death with Dignity Act. *주 2)이 합법화한 지역이 되었던 것이다.

 < *주 2 : DWDA의 직역은 '존엄사법안'이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존엄사' 용어는 '소극적 안락사(연명의료중단)'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오리건법안은 '적극적 안락사'뜻을 살려서 '안락사법안'이라 번역함이 좋겠다. >

 오리건州의 위험천만한 안락사법이 전국에 확산될 것을 우려한 미국 각주에서는 제가끔 '안락사금지법'을 제정하여 대비해나갔다.

 여기에 뉴욕과 워싱턴의 안락사 지지단체는 이 금지법에 대해 위헌소송을 제기했으나, 1997년 6월 연방대법원은 만장일치로 "각주의 PAS금지법은 합헌"이라 판시했고, 판결문에서 "각주의 미국인들은 안락사의 도덕성과 합법성에 대해 진지하고도 심도 있는 논의를 계속할 수 있다"고 논급했다.

 PAS문제는 찬성하는 오리건이나 반대하는 대다수 주의 주민다수결에 의해서 여론을 수렴한 각주의 독자적 결정을 존중한다는 함축성이 담겨있다.

 제각각 특징을 가진 50개 주가 합쳐서 '다양성 가운데 통일(E PLURIBUS IN UNUM)'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 미국의 법정신이란 말이다.

 현재 47개 미국 주에서는 PAS를 2급 살인죄로 다스리고 있다.

 그리고 미국 모든 주에서는 존엄사(연명의료중단)를 허용하는 Living Will을 법제화하고 있음을 부언해 둔다.

 그런데 오리건안락사 발효당시(1997년)에도 지금의 공화당보수정부 처럼 민주당정부 일각에서 연방정부 차원에서 통제약품법안으로 PAS관여의사를 처벌하자는 시도가 있었으나, 그때 Reno법무장관의 양식있는 판단에 의해서 사전에 중단되었음을 거듭 소개해본다.

 클린턴 민주당 정부 당시 약품통제국(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 DEA라 약칭) C국장은 안락사에 대해 대다수 여야의원과 여론의 거센 반발을 의식한 나머지, "PAS를 위해 치사량의 통제약품처방을 하는 오리건 의사들은 연방통제약품법을 위반하기 때문에, 연방정부서 관할하는 약처방면허를 잃게 될 것이다"고 경고했으며, 그 근거로 "DEA는 CSA(Controlled Substance Act. 통제약품법안)에 의해서 약품을 비합리적으로 처방하는 의사들의 처방면허증을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고 있다"고 장담했다(11/5/1997).

 여기대해 C국장의 직속상관인 Reno연방 법무장관은 위헌소지를 염려한 듯, 오랜 침묵(연구?)끝에 1998년 6월에 "DEA는 CSA에 의해서 의사 처벌권한을 위임받은바 없다"고 선언함으로서 자기부하인 DEA국장의 발언을 번복했다.

 Reno장관의 선언이후 의회의 안락사 반대세력은 PAS관여 의사를 단속할 목적으로 약품통제법안의 수정안을 법사위에 통과시켰으며, '약품치사량 남용예방법'(Lethal Drug Abuse Prevention Act)이라 불리는 이 법안의 의회통과는 낙관적이었다.

 그러나 AMA의 반대와 의사들 편에 선 클린턴대통령의 영향으로 이 법안은 도중하차할 수 밖에 없었다.

 평소 안락사 반대의 선두에 나섰던 AMA가 PAS를 금지시키려는 이 법안에 반대한 이유는 의사권익옹호를 위해서였다.

 AMA대변인 Dr. Readon는 "의사들에 대한 어떠한 의료행위제한이나 처벌법을 우리는 반대 한다"고 단언했다.

 이와 같이 오리건안락사가 법제화 된 초기에 이러한 홍역을 치른 다음 한때 잠잠해진 안락사파동은 보수적인 부시정부가 들어서고, 여기에 극단 보수정객 Ashcroft가 법무장관이 됨으로서 다시금 소란을 피우게 이르렀다.

 그는 CSA를 자의로 해석남용해서 오리건 PAS를 말소시키려고 시도했다가 연방지방법원에서 퇴짜 당했으며, 그의 후임자가 다시금 대법원에 상고했다가 이번 2006년 1월 17일자 판결을 맞은 것이다.

 PAS관여의사에 대한 처벌이 부당하다는 이번 대법원판결은 간접적으로 오리건안락사의 손을 들어준 셈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당한 법률해석을 한 결과에 불과하며, 대법관들이 안락사에 동정적이라는 뜻은 추호도 내포돼 있지 않음을 필자는 강조하고 싶다.

 대법관 전원이 양식가진 모든 미국인 처럼 안락사 반대자임은 하나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언론보도는 그 표현에 있어 독자로 하여금 미국사회가 안락사인정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인상 또는 오해를 주고 있음은 유감이라 하겠다.

 결론으로 존엄사를 찬성하는 대다수 미국인의 안락사에 대한 거부반응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음을 필자는 강조하고자한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