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욕 충족 노년기 독서가 제격]

지식욕구 지나쳐도 정신건강에 보탬
독서 여유가지면 노년이 황금기로 승화

▲ 김일훈 박사
- 在美 내과 전문의
- 의사평론가
■ 노년기 독서

 65세가 되면 Senior Citizen 즉 우리말로 법적인 노인(老人)이 된다.

 봄 새싹이 돋아나는 소년시절이 어저께 같은데 어느새 풍상에 젖은 긴 세월이 지나 추풍낙엽 같은 쓸쓸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少年易老 學難成, 一寸光陰 不可輕(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은 이루기 힘드나니, 일초의 시간도 가볍게 보내지 말지어다)은 옛날선비들이 후진에게 공부를 권장하는 격언이다.

 시간이 빨리 흐르니, 부디 소년기에 시간을 아껴서 공부와 독서를 열심히 하라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긴 세월이 흘러가고 글이 이젠 바뀌어 소년은 늙기가 쉽다(少年易老)대신에, 노인은 죽기 쉽다(老年易死)의 시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노년기 인생에겐 "노인은 죽기 쉬운지라(老年易死), 죽기 전에 시간을 아껴서 못다한 독서와 학문을 열심히 하시오"라는 격언이 되어버렸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에 이르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됨으로, 누구나 할 것 없이 죽는 날까지 보다 충실한 생애를 채워보려고 한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은 겉치레를 좋아하는 사람의 욕심이고, 뜻있는 사람이라면 "하늘을 우러러 한 치 부끄러움이 없는 인생의 끝맺음"을 바랄 것이다.

 자신의 내면이 응고되어 원숙한 삶을 완수하려는 고귀한 끝맺음 - 그것이 노년기의 독서욕 지식욕이다.

 고대희랍의 철인 아리스토톨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지식욕이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근원적 욕구로서 식욕 성욕과 더불어 지식욕이 있다.

 그런데 식도락 등의 속된 인생의 낙(樂)은 지나치면 건강에 해되기 마련인데, 독서의 낙은 지나칠수록 몸에 살이 되고 양식이 된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드니(日暮途遠), 못다 읽은 책들이 무한정하고 또한 가보고 싶은 이름난 고장도 너무나 많다.

 速讀 精讀할 책들을 골라잡아 1주일에 2권씩 읽는다해도 1년에 100권이고, 앞으로 10년간 여생이 허용되어도 1천권에 불과하다.

 내가 존경하고 부러워하던 독서인들은 장서 몇 만권을 남기고 가는데, 잘해야 10년간 1천권 소화한다는 계산이고 보면 마음에 차지 않지만 실망하지 않으려한다.

 단숨에 끝장까지 완독하는 책도 있겠으나, 책에 따라서는 필요한 곳만 읽고서도 배부를 수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이 노인(나 자신)의 마음은 젊고 계획은 화려한지라, 이런 것도 읽고 저런 곳에도 가보고나서야 세상을 하직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지금 열심히 운동하며 건강생활에 노력하고 있다.

 나의 이러한 노년기고충을 "君子는 心勞한다"는 옛말에 비유해보며, 높은 선비(君子)는 마음의 고생(心勞)을 스스로 사서 가진다는 점에서 외람되게도 내 자신 군자(독서인)를 자칭해보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노년기의 망상일 것이다.

 그래서 허영 많은 이 사람(노인)이 만일 읽어야 할 많은 책을 남긴채 죽는다면 그 원통한 일이야말로, 마치 본토수복을 못 한채 '대만'섬에서 객사한 장개석의 심경처럼 한(恨)을 안고서 세상을 하직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노년이 인생의 황혼기라면 독서에 열중할 수 있는 노년의 춘하추동은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서재에 쌓인 책들은 "잠 못 이루는 기니긴 노인의 밤"을 위로해주는 풍성한 곡식이 되고도 남는다.

■ 독서와 좌력

 공부하고 독서는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사람에게 특수한 힘을 필요로 한다.

 장시간동안 의자에 앉아서 견디는 힘이 바로 그것이다.

 고대 유태인의 히브리 언어에 '오래 앉아있는 힘'이라는 용어가 있어, 굳이 번역하자면 '좌력(座力)'이라는 표현이 적합하겠다.

 유태인들은 어릴 때부터 성경(구약성서)공부 등을 위해 '좌력'을 연마하고 있다고 전한다.

 유태인이 우수한 학자와 예술가를 많이 배출한 요인의 하나라 볼 수 있다.

 노인은 '좌력'을 포함한 힘에 있어서 젊은이를 따라 잡을 수는 도저히 없다.

 자신의 예를 들어 미안하지만, 나는 '좌력'을 극복하기 위해 '안락의자'의 도움을 받고 있다.

 5년 전 은퇴이후 내 서재생활에서 쾌적한 1인용안락의자가 유일한 의자가 되었고 높은 의자와 큰 책상은 아예 사라졌으며, 큰 서재테이블은 거추장스럽거니와 필요도 없어 이사하면서 아예 없애버렸다.

 내 스튜디오서재엔 안락의자 앞에 다리 잘린 나지막한 컴퓨터테이블이 있어 안락의자와 잘 매치되어 있다.

 이곳이 나의 주야작업장이기도 하야 몇 시간이고 컴퓨터와 씨름하다가 피곤하면 의자에 기대어 졸기도 한다.

 나의 제2서재라 할 내 침실에도 안락의자가 있어 한가할 때 편안한 자세로 책 읽으며 또한 그 앞에 화가들이 그림그릴 때 사용하는 작고 나지막한 이동용 workstation(tray table 닮은)이 있어 책상대신 애용하고, 그 위에 놓인 lap top도 가끔 사용한다.

 이렇듯 안락의자야 말로 내게 젊은이와 경쟁하려는 만용을 갖게 하는 '비결'이다.

 나의 가장 사랑받는 '안락의자'는 나(노인)와 약해져가는 내 '좌력'의 타협물이 되어가고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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