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QOL 향상 현대의약]

미국민 약제비 부담 최근 5년 2배 증가
값비싼 신약 출현…건강중시 고가약 선호
수명연장-삶의 질 강조 부담 증가 불가피

▲ 김일훈 박사
- 在美 내과 전문의
- 의사평론가
 이번 미국대통령후보의 마지막 토론회(10월 13일)에서 의료의 주된 이슈는 4년 전 대선토론과 마찬가지로 치솟는 의료비와 노인약값문제였다.

 필자는 4년 전 본지에 '대선과 의약논쟁'에 관해 쓴바 있으며, 중복되지만 그때 서두에 적었던 글을 그대로 본 시리즈의 서론으로 이번 2장에서 되풀이 인용한 다음 본론으로 들어가고하자 한다.

 4년 전 글이라 그사이 통계숫자의 변동은 다소 있겠으나, 의약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은 마찬가지라 하겠다.

 약은 우리 인간에게, 특히 노인에게 가장 귀하고 고마운 물질이다.

 약은 잘못 쓰면 마약이나 독물역할을 하지만, 잘만 쓰면 '삶의 질'(Quality of Life. QOL)을 향상시키는 복(福)과, 건강수명을 연장케 하는 수(壽), 즉 인생의 2대 행복을 가져다준다.

 1989년 조-지 부시 대통령(현재 부시의 아버지)은 취임사에서 마약이 '국민의 제1호 공적'(公敵. Public Enemy Number One)이라고 규정하며 Drug War를 선포했었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난 전번과 이번 대선대결에서 그의 아들 부시와 민주당후보는 '노인의 약 문제'를 톱 이슈로 내걸고 있으니, 또 다른 의미에서의 Drug War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1989년에는 약의 해독으로부터 해방하는 명랑한 사회건설이 첫 과제였으나, 고령사회에 깊이 들어선 지금은 약이 노인의 필수품임을 중요시하여 약값을 도움으로서 복지사회건설에 기여하자는, 말하자면 약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세상이 되었다.

 두 대통령 부시 부자간의 짧은 1세대의 시대변천사에서 이미 Drug War는 그 목표가 정반대 방향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러나 이 상반된 사실은 문제의 나쁜 면을 먼저 다스리고 난 다음 좋은 면을 찾아 발전시킴이니, 역사가의 어려운 말을 빌리자면 "Anti-these(반립. 反立)를 지양(止揚)함으로서 높은 차원의 Syn-these(종합. 綜合)에 오르는 역사적 변증법적(辨證法的)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160년 전 아편전쟁의 원인인 아편을 당시 무지한 중국인이 좋아할 수밖에 없었으니,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고 인생을 황홀케 해주는 '신비의 약'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엄청난 부작용과 습관성에 전혀 무지했기 때문이다.

 미국의사는 약처방시 중요한 부작용을 강조해서 환자에게 알리며, 미국약국에서 약 판매할 때 약 효과는 설명치 않고 환자에게 공갈치듯 약 부작용을 길게 나열한 프린트 몇 장을 반드시 끼어준다.

 자신들의 법적 보신책이기도하지만 환자를 보호하자는 큰 뜻이 담겨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옛적부터 '보약'을 과신하는 전통이 있어 눈앞의 약 효과만 기대했으니, 그 부작용으로 초래되는 약의 점진적인 살인행위를 몰랐기 때문이다.

 조선 역대 왕과 왕자들 평균수명이 단명이었다는 통계를 본적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왕족들은 허약해져서 시들시들 하다가 죽는지라, 그 원인을 두고 흔히들 '섹스과다'탓으로 돌린다.

 무치(無恥)의 특권을 누리며 제멋대로 놀아났던 생애고 보면 그런 평 받아도 마땅할 것이다.

 허지만, 필자는 그들의 사인이 보약과다(補藥過多)탓이라 주장하고 싶다.

 그들이 과용했을 보약의 부작용은 뚜렷한 증세 없이 서서히 골수를 침범하는 만성병들, 이를테면 백혈병이나 악성질환 등으로 진행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본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과학적 임상검정을 거치지 않은 한약복용이나 항생제 등 의약남용을 피한다면, 병 예방과 올바른 치료에 공헌하는 '약 만능시대'에 살고 있다 할 정도로 최근 약품은 비약적으로 발전돼왔다.

 진시황은 온갖 수단을 다 써서 불로초를 찾아 헤매고도 실패했으나, 현대첨단과학은 제약회사로 하여금 막대한 비용의 연구투자를 통해서 건강수명연장과 인간의 행복증대를 가져다주는 약들을 개발했으니, 오늘날의 약은 옛날 찾던 '불로초'에 가까운 수복정(壽福錠)이 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구시대의 유물인 보약만능에서 벗어나, 바야흐로 약의 장점만 살려 우리인생을 행복으로 이끄는 약의 광명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신약품으로 우리주변에 가장 흔한 만성생활습성질환(고혈압, 당뇨병, 폐 질환 등등)을 계속 치료함으로서 우리는 심경색증(Heart attack), 뇌졸중과 기타의 치명적인 병을 예방가능 할뿐더러, 과거의 불치병도 기적적인 치유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값비싼 신약 출현덕분에, 비용을 크게 잡아먹는 장기입원을 단축시키고 달갑지 않은 수술이나 특수치료를 피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지니, 결과적으로 의료비절약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게되었다.

 예를 들어 뇌졸중환자 치료에 상용되는 혈전분해제(Thrombolytics)는 고가약이지만 이 치료법으로 입원기간을 최소한으로 단축시킴으로서 총의료비가 $4,400 절약된다고 미국국립보건원에서 발표한바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제약회사는 그들의 큰 이윤에도 불구하고 신약개발과 약품개선으로 금전적으로도 국민에게 크게 공헌하고 있는 것이다.

 노벨 의학상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미국의학이 단연코 세계 제1로 군림하고 있는데는, 다른 분야 즉 우수한 의학교육과 연구, 방대한 재정적 뒷받침 등도 있지만 여기서 제약회사의 공로를 무시할 수 없다고 하겠다.

 이러한 제약계와 국민간에 결과적으로 상부상조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미덕이라 하겠으며 보는 관점에 따라 제약산업이야말로 우수한 미국의료의 1등 공신이라고도 하겠다.

 통계에 나타난 숫자를 보면(도표 참조) 미국에서 가장 이윤이 크게 남는 5대산업에서 첫째가 제약분야(이윤 18.6%)이며 은행(15.8%)과 컴퓨터산업(12.1%)보다 앞서고 있으나, 그 이윤 못지않게 현대약품이 국민복지에 공헌하고 있으니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이윤 높은 미국 5大산업(총수입에 대한 이윤 %) 

 Most Profitable Industries
 PROFITS AS PERCENT OF REVENUE
 (1999)

 Pharmaceuticals 18.6
 Commercial banks 15.8
 Computer peripherals 12.1
 Telecommunications 11.7
 Beverages 11.0

 제약회사의 신약개발 연구비는 1980년에 15억불 사용했던 것이 20년이 지난 2000년 현재 15배인 225억불을 소비하고 있으니, 전체약값(1,250억불)의 20% 가 연구비란 말이다.

 신약 하나를 시장에 출품하기까지는 평균 12년에서 14년의 세월과 5억불이 소요되며 그나마 어려운 임상실험에 합격해서 상품화되는 약은 10중 1이라니, 그 과정과 비용이 엄청남을 알 수가 있다.

 여기에다 신약의 판매추진비가 140억불(그중 광고비 20억불)소요된다니, 우리가 함부로 만지는 작은 알약은 천문학적 금액과 정성어린 공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시판되기 시작한 Gleevec는 만성백혈병(CML. Chronic Myelogenous Leukemia)치료제로 병을 거의 완치할 수 있다는 신약인데, 이 약값은 1개월 분이 약 2,400불이니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년 3만 불이라는 큰돈이 필요하게된다.

 이러한 항암제의 기본연구자금은 NCI(National Cancer Institute. 국립 암 연구소)에서 지원하고있다지만, 약이 시장에 판매되기까지의 긴 연구실험은 이익추구를 위주로 하는 제약회사에서 담당한다.

 그럼으로 약 출현에 소모된 만큼의 약값을 메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약값폭등과 국민의 의료비부담증가로 해서 제약업자를 비난하는 여론이 커져 현재 미국의료계는 소란하다.

 과거 5년간 미국인의 약값은 2배로 껑충 뛰어 2000년도 1,250억 달러라는 금액은 세계 제1가는 미국국민 총 의료비(2000년 현재 1조1천억)의 11.5%를 차자하며, 이 액수는 2008년엔 다시 2배가되어 2430억불이 될 전망이다.

 그래서 미국은 '의료대국'에다 '의약대국'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의료의 양과 질은 동전의 앞뒤와 같은 것으로, 질적으로 세계최고를 누리고 있는 미국의료는 양적으로도 최고액의 의료비와 약값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부담이라 할 약값의 폭발적인 상승이유를 요약하자면, 첫째 고령화사회의 진전에 따라 약을 상용하는 노인인구비율이 더욱 늘어나며, 병 정복을 위해 새로 개발돼 나오는 값비싼 신약이 많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둘째 새약이나 개량된 약은 값비싼데도, 미국인은(한국인도 마찬가지겠지만) 건강에 관여된 상품만은 다른 상품과는 달리 '최고품'을 찾기 때문이다.

 셋째 환자에게 없어서는 안될 신약품을 개발한 제약회사는 그에 대한 특허권을 소유함으로서 경쟁 없이 고가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비아그라 특허권을 소유한 파이자회사는 지난해에 이미 6억6천만불의 매상고를 올렸다.위와 같이 약 사용확대와 약값폭등으로 특히 약을 상용하는 노인층의 불만이 여론화되어, 정부는 제약계에 약값통제를 가한다지만 한계가 있다.

 그러면 다음 장부터 미국의약의 여러 문제점에 대해 논의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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