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명의 지역 의사들이 저녁에 한 자리에 모인다.

5~6개의 테이블에 나눠 앉은 그들은 구의사회의 지난해 사업 실적, 올해 계획 등을 들은 후 차기 회장직에 단독으로 출마한 후보를 만장일치 박수로 선출시킨다.

이후 집행부에서 준비한 시의사회 건의안에 그대로 찬성하며 행사를 마친다.

요즘 각 시별로 한창인 구의사회 정기총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회원의 참여가 지극히 저조하다보니 몇 안 되는 참가자들이 집행부에서 준비한 식순대로 박수만 치다가 총회를 마치는 풍경이 펼쳐진다.

최근 정기총회를 치른 한 구의사회에서는 참가자가 20여 명인데 위임자가 그 세 배를 넘겼다.

그런 소수의 인원이 구의사회 한 해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결정하는 것이다.

게다가 중요한 시의사회 건의사항은 대부분 집행부 몫이다.

이처럼 현안에 대해 불만은 가득한데 공론의 장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기존세력에 대한 불신과 ‘내가 참여해봐야 무엇이 바뀌겠는가’라고 여기는 인식 탓이 크다.

의료계 중 특히 개원의들은 올해 중요한 변화의 길목에 서 있다.

당장 다음 달에 새로운 대한의사협회장을 선출하는 선거가 있고, 4월부터는 의료계에서 반대하던 만성질환관리제·의료분쟁조정법·면허신고제 등이 일제히 시행될 예정이다.

이렇게 중요한 사안들에 대한 민심을 모을 수 있는 첫 번째 단계가 구의사회다.

현장에서 나 혼자 느끼는 애로사항을 동료들과 공유하며 상급단체에 소리칠 수 있는 첫 번 째 장소다.

그렇게 중요한 모임이지만 주인공들이 그 자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야 불만을 줄일 수 있다.

현실 탓만 하며 공론의 장을 외면한다면 국민들은 의료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며 더 이상 바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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