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기업으로 만들겠다 - 전문의약품 취급 자부심

현재 어려움 슬기롭게 대처하자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의약품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필요한 곳에 전달하는 의약품유통업체인 신광약품이 100년을 이어갔으면 합니다.”

▲ 박용영 회장

신광약품(주) 박용영(72세) 회장은 “현재 대부분 의약품유통업체들이 경영환경의 악화로 업계를 떠나가거나 2세에게는 다른 업종으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며 “그러나 신광약품은 100년 기업이 되었으면 합니다.”

박회장은 “의약품유통업은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중간전달자로 한편으론 의약품 생산보다 더욱 중요하다”며 “일본의 경우처럼 가업이 몇 세대를 이어오듯이 신광약품도 100년 기업으로 이어가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박용영 회장이 의약품유통업에 매력을 느끼고 가업으로 이어가도록 하는 것은 그가 광주지역 최초로 약국영업이 아닌 병원영업으로 시작해 전문의약품을 다뤘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광약품이 설립된 1988년 12월 광주지역에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광주약품, 대성약품, 백제약품 등의 대형 도매업체들이 경쟁을 하고 있었다.

이들 대형 도매업체들이 에치칼 영업보다 오티시영업에 주력하고 있는 사이에 신광약품은 에치칼 도매업체로 큰 성공을 거둔다.

박회장은 그당시 “전남대병원 등을 주력으로 매년 30%씩 매출이 늘어났다”며 “특히 마진이 좋은 품목영업을 하지않고 전문약만 취급하는 정당한 영업을 해서 성장했다”고 자랑했다.

이처럼 무난하게 회사를 키워가던 박회장은 모든 의약품 도매업체가 약국영업을 해야하는 의약분업 사태를 맞게되고 병원영업만을 해오던 신광약품은 큰 위기에 처한다.

박회장은 의약분업을 시작하기 전 ‘의약분업은 신광약품과 함께하면 편리합니다’라는 제목의 인쇄물에 ‘복약지도, 전문약 구매요령’의 내용을 담아 약국에 배포하고 당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또한 ‘영업사원 없는 영업’, ‘온라인 송금제도’를 맨 먼저 도입하고 나중에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그락소, 중외제약 등의 약업계 원로들로부터 제약회사에서 해야할 일을 신광약품이 다했다는 칭찬을 받는다.

이야기 도중 영업사원 없는 영업에 대해 박회장은 “초창기는 그랬지만 이후 약국에도 영업사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고 약국영업 사원을 뽑아 담당자 없는 영업에서 담당자 있는 영업을 하고 있다”고 웃는다.

이와관련해서 박회장은 “담당 영업사원이 있는데도 유통마진 5%는 말 그대로 배달비용으로 너무 적다”며 “전문의약품을 적기에 납품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반영이 안된 것 같다”고 강조했다.

“도매업체는 도매이익이 많이 나야 직원들 월급을 올려줄 수 있는 데 이익이 발생하지 않아 직원들 임금을 충분히 주지 못해 아쉽다”고 걱정했다.

또하나 “제약회사의 유통업체에 대한 담보요구도 좀 지나치다”며 “그러나 최선을 다해 운영하고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활력소가 될 보완책이 나올 것으로 믿는다”고 말하고 기업이 100년동안 지속하기 위해선 많은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신광약품은 출발이 전문약품 취급 도매상이었기 때문에 다른 의약품유통업체들과는 다른 직원들에 대한 복지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먼저 신광약품 전직원은 대학교까지 학자금 영수증을 제출하면 모두 주고 있으며 또하나 신광약품 구내식당은 맛과 영양으로 약업계에서는 유명하다.

박회장은 “대학 4년간 자녀학자금은 제약사 보다도 좋은 제도다”며 자랑하고 구내식당에 대해선 “초창기 직원이 6명일 때부터 운영해 현재 45명 직원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건강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회장은 “대부분 의약품유통업이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야 한다”며 “이를 넘어 신광약품이 100년 사회적 기업으로의 전통을 세웠으면 한다”고 바램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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