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교수 “뛰어난 효능에도 제한된 급여 기준으로 사용 대상 적어”

한국 의약품 시장에는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다. 바로 ‘보험급여’라는 큰 산이다. 아무리 뛰어난 약이라 하더라도 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으면 현장에서 선택되기 어렵다.

치료 효과와 더불어 환자의 경제적인 면까지 고려해야 하는 의사 입장에서는 보험적용이 되지 않은 고가의 약을 환자에게 강요할 수 없다. 더구나 당뇨병 치료제와 같이 한 번 복용하기 시작하면 장기간 써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때문에 일부 치료제는 제한적인 보험급여 때문에 뛰어난 효능에도 임상 현장에서 외면을 받고 있다. 당뇨병 치료제 중 인크레틴 기반 치료제인 GLP-1 유사체가 그 중 하나에 해당한다.

▲ 김병준 교수
GLP-1 유사체의 우수성과 보험급여 기준 개선에 대해 가천의대 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김병준 교수의 의견을 들어봤다.

당뇨병이란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의 분비기능이 떨어지거나 혈당을 높이는 글루카곤의 분비가 많아지면서 발생한다.

이에 많은 당뇨병 치료제가 인슐린 분비를 보완, 즉 인슐린 분비를 자극하거나 인슐린 저항성을 낮추는 방식으로 자극한다. 대부분의 경구용 약제가 이런 작용을 하고 있다.

김병준 교수는 “반면 글루카곤의 분비를 감소시키는 방법은 없었는데 GLP-1 유사체는 인슐린을 분비하면서도 글루카곤의 분비를 감소시키는 작용을 한다”며 “즉 혈당이 높아져 있는 상태에서는 혈당 의존적으로 인슐린 분비량을 늘려 혈당을 떨어뜨리고 혈당이 떨어져 저혈당으로 가려고 하면 인슐린 분비를 차단해 저혈당을 예방하는 ‘혈당 항상성’을 유지하는 제제”라고 말했다.

저혈당 발생 위험이 적다는 점과 함께 GLP-1 유사체의 또 다른 장점은 체중감소 효과다.

당뇨병 관리는 크게 공복혈당과 식후혈당 조절로 이루어진다. 공복혈당 조절에는 기저 인슐린이 가장 좋은 방법으로 꼽히고 있다.

문제는 식후혈당이다. GLP-1 유사체는 위에서 음식물을 배출하는 속도를 늦춰 식욕을 억제시킨다. 식사량이 줄어 식후혈당이 감소하게 된다.

김 교수는 “기존에 쓰이고 있는 경구용 약제나 식후 인슐린은 체중증가와 저혈당의 위험을 고려해야 하지만 기저 인슐린과 GLP-1 유사체를 병용하면 체중증가와 저혈당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어 이 두 제제는 궁합이 잘 맞는 치료 조합”이라고 말했다.

즉 인슐린을 분비하는 베타세포는 혈당이 높아지면 당 독성을 보이며 무리가 생기는데 기저 인슐린과 GLP-1 유사체를 함께 쓰게 되면 기저 인슐린이 베타세포를 쉬게 하고 GLP-1 유사체가 베타세포를 보다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럼 이처럼 뛰어난 약제가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얼마나 사용되고 있을까. GLP-1 유사체의 시장 규모는 미비한 수준이다.

현재 한국에서 당뇨병 치료제로 경구제를 선택한 환자는 80%가 넘는다. 인슐린 사용자가 11% 정도이고 GLP-1 유사체 사용자는 100명 중 2명에도 미치지 않는다.

이는 국내의 제한적인 보험급여 기준이 원인이다. 현재 기준으로는 혈당 조절이 잘 되지 않는 환자 가운데 체질량지수(BMI)가 30 이상이거나 인슐린 치료를 할 수 없는 환자에게만 보험급여를 인정하고 있다.

즉 그 대상이 너무 한정되어 있어 쓸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김 교수는 “GLP-1 유사체와 같은 인크레틴 기반 치료제들이 처음 소개됐을 때 당뇨병 치료에 효과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보험급여 기준 때문에 실제 쓰고 있는 환자는 많지 않다”며 “GLP-1 유사체는 체중감소 효과가 강조되면서 마치 비만인 당뇨 환자들만을 위한 치료제인 것처럼 보험급여가 설정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기존 치료제와의 병용요법과 치료 초기단계부터 GLP-1 유사체 단독요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다.

유럽당뇨병학회, 미국당뇨병학회 가이드라인에서는 GLP-1 유사체를 메트포르민 이후 2차 치료제로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고 다른 치료제와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권하고 있다. 한국 학계에서도 GLP-1 유사체의 사용 권고에 대한 동의는 이루어진 상황이다.

김 교수는 “기저 인슐린과 GLP-1 유사체의 병용이 허용되면 효과적으로 혈당을 관리하면서 기저 인슐린의 용량을 점진적으로 줄일 수 있는 등 경제적인 이점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GLP-1 유사체를 당뇨병 치료의 마지막 단계를 위한 치료제나 비만한 당뇨 환자만을 위한 치료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김 교수.

김 교수는 “GLP-1 유사체는 당뇨병 치료제의 또 하나의 옵션이며 다른 치료제와 병용으로 사용될 때 더 좋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며 “정부가 학계의 의견을 경청해 보다 현실적이고 실제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유연성을 발휘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국내에서 허가된 GLP-1 유사체 제품에는 바이에타, 빅토자, 릭수미아, 바이듀리온이 있고 이 중 바이에타와 릭수미아가 보험급여 적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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