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채종희 교수 “자책 보다 대책이 우선, 시스템이 환자와 가족 울타리 되어주길”
'NGS' 희귀질환 진단 패러다임 변화…유전자와 증상 연결 과정 통해 의사 경험과 지식 발전

[의학신문·일간보사=오인규 기자] “이건 신이 실수를 하신 거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대책을 세우자'라는 이야기부터 하자”

세계 희귀질환의 날은 전 세계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을 응원하고 희귀질환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기 위해 2008년 시작된 기념일로,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희귀한 ‘2월 29일’에서 착안해 매년 2월 마지막 날로 제정됐다.

올해의 캠페인 테마는 ‘Share Your Colors(당신의 컬러를 공유하세요)’로, 전 세계적으로 7,000가지 이상 존재하는 희귀질환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중요성을 조명한다.

희귀질환 진단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려면 한 환자에게 나타난 여러 증상을 각 분야의 전문가가 따로따로 보더라도, 각 전문의가 모여서 협진 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진 병원에서 환자를 보는 게 중요하고 정부는 최상급병원에서 시스템을 잘 유지하고 발전시키도록 지원해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비용 효과 면에서 살펴본다면, 환자 수는 적은데 한 번 볼 때 걸리는 시간은 많고 복잡하며, 환자 한 명에 여러 명의 전문가가 함께 진료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의료 수가가 3배가 4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병원 경영을 위해서 협진 시스템을 활성화시키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분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귀질환을 보는 의사들은 의료 수가와 상관없이 환자를 위한 시스템을 갖추려고 애쓰고 있다. 서울대병원에서도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2021년도에 ‘임상유전체의학과’를 만들었다. 첨단 기술인 NGS도 선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채종희 임상유전체의학과 교수<사진>는 최근 의학신문과 만나 “희귀질환의 약 80%는 유전적 배경에 원인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20%는 유전자가 그 직접원인이 아닌 경우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즉 유전적 이유가 아닌 질환인 경우 유전자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접근하는 경우 ‘진단 방랑(diagnostic odyssey)’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희귀질환의 원인의 80%가 유전자가 관련된 질환이다. 유전자를 해독하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당연히 혜택이 증가한다. 과거에는 원인이 되는 유전자 한 개를 찾아내는데, 10년 또는 20년이 걸렸다면, NGS 시대가 오면서 특정 질환의 원인이 되는 신규 유전자를 1년에 200~300개를 찾아낼 수 있게 되어 희귀질환 진단 패러다임을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유전자 NGS 기술의 등장, ‘마술 지팡이’를 얻게 된 의료진

채종희 교수는 “그런 면에서 NGS 기술의 등장은 어떻게 보면 ‘마술 지팡이’를 하나 얻은 셈”이라며 “물론 그 마술 지팡이가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지만, 희귀질환 진료의 시작이 정확한 진단에서 시작되므로 관련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NGS 진단 기술을 통해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빨리 발견해서 치료법을 완전히 바꾼 사례도 있다.

약 20년 전만 하더라도, 환자 하나를 희귀질환이라고 진단하면, 그 원인이 되는 단일 유전자를 특정해서 검사해 보고, 검사상 음성이면 그 다음 유전자, 그 다음 유전자, 이렇게 단계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유전자 원인을 찾는 데만 1, 2년이 훌쩍 흘러갔다.

반면 지금은 아주 짧게 하면 2~3개월 안에, 그리고 응급진단이 필요한 특정 상황에서는 1~2주 안에도 유전자 진단이 가능한 시대가 왔다. 이 모든 것은 NGS 기술 덕분인 건 사실이다.

채 교수는 “희귀질환을 보는 의사들에게 NGS 기술은 희귀질환의 진단에 있어서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왔다”며 “진단 측면에 있어서는 NGS 기술이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그런 시대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건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지금은 포스트 NGS를 논해야 하는 시점이다. NGS 기술로 유전자 변이가 어디에 있는지 글자는 다 읽었다면, 이제는 그 뜻을 부여하는 과정이 더 중요한 화두가 돼야 한다. NGS를 이용해 유전자와 임상 증상을 연결하고 진단하는 과정을 통해 의사들의 경험과 지식도 발전하게 되는 선순환의 기능도 있다.

채종희 교수는 “최근 이 분야에서는 ‘Beyond the Exome, Beyond the Genome’ 이런 말들을 하는데, 이제 유전체와 관련된 정보를 최대한 많이 모아서 의미화 하는 작업이 중요해졌고, 이게 바로 빅데이터 사업과 연결된다”며 “이러한 것들이 함께 가야지만 NGS 테크놀로지가 더 힘을 받게 된다고 조언했다.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건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인식 제고

한편 희귀질환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어느 날 나에게 그냥 다가온 예측하지 못한 사고라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 절대 자책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의미 있는 메시지도 남겼다.

채 교수는 “환자와 가족들은 ‘내 잘못이 아니다 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잘 극복하느냐’라는 긍정적인 마음이 필요하고, 전문가 집단과 사회는 개인의 잘못이 아니니 옆에서 도와주고 함께 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희귀질환은 국가, 사회, 이웃, 의료진, 가족이 함께 가야 한다. 그래서 이렇게 세계 희귀질환의 날도 만들고, 네트워킹도 하면서 우리 모두가 서로 곁에 함께 있음을 보여주는 이유다.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건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나누고, 함께 하려는 노력을 하는 게 필요하고,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본인이나 가족은 ‘지금 나에게 닥친 사고는 너무 힘들지만 또 다른 날에는 나에게 더 좋은 운이 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채종희 교수의 거듭된 바램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전문가도 또 정부도, 그리고 사회의 이웃도 희귀질환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 사회와 국가의 시스템이 함께하며 환자들과 그 가족에게 큰 울타리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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