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장, “전문가 의견 반영 법·제도 정비” 강조
국가 지원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 시행 등 개선책 마련도 시급

[의학신문·일간보사=김현기 기자] 지난 여름 분당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그리고 몇 해 전 진주 방화 살인 사건 등은 조현병 환자에 의해 저질러 졌다. 이에 따라 국민 정신건강관리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었고, 정부도 여러가지 대책을 마련해 왔다.

그러나 일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현재까지 나온 정신질환 관리대책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대목이 많다고 지적하며, 국가적으로 정신질환자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br>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김동욱 회장<사진>은 최근 의학신문과 만난자리에서 무엇보다 정신질환자 관리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 법과 제도 마련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김동욱 회장은 “최근 잇따라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등에 정신질환과의 연관성이 언급되는 사건들이 자칫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더 심해지고 정작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치료에서 더 멀어지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 회장에 따르면 수년 전 큰 충격에 빠뜨렸던 안인득 사건, 정신과 전문의 피살 사건이 연쇄적으로 벌어진 이후, 정신건강의학과 치료 환경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코로나로 인한 감염 예방을 명분으로 급격하게 진행된 시설 규정 강화에 따라 유수의 정신과 병원들이 경영난으로 폐원하면서 지난 2~3년간 전국적으로 1만 개가 넘는 입원 병상이 단기간에 사라졌다는 것.

김 회장은 “전문가들의 우려대로 지역사회 정신보건 현장에서는 급격한 제도 변화에 따른 부작용들이 끊임 없이 일어나고 있다”며 “재활과 거주 등을 위한 인프라가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추진된 탈원화 정책은 취지와 달리 수많은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사회의 여기 저기 방치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폐지 △전문가 의견 반영한 법과 제도 정비 △국가 지원하는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 시행 등 개선책이 시급하다는 게 김 회장의 주장이다.

김 회장은 “정신질환자의 돌봄과 치료에 대해 사회경제적 부담과 입원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가족에 전가되고 있으나 이러한 무한한 부양의 책임을 짊어질 가족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며 “결국 입·퇴원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족간의 갈등은 지지체계의 붕괴를 낳고, 이는 정신질환의 지속적인 치료를 어렵게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정부는 인권적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정신보건의 현장과 현실의 문제들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실현 가능한 법과 제도의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며 “특히 스스로가 병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 환자의 의사에 반하더라도 조기의 적극적인 치료적 개입이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정신질환자의 증상 악화 전 조기발견과 치료가 가능한 법률·제도적 장치를 통해 이송과 입원 과정 등에 필요한 정신응급체계를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 게 김 회장의 판단이다.

아울러 현 입원제도로는 자타해 위험이 명확하지 않은 조기 정신증 상태의 환자들이 위험성이 높아지기 전 제때 치료를 받기 어려운 만큼 퇴원 이후에도 국가 책임 하에 치료를 지속할 수 있도록 외래치료 명령제도를 수정·보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회장은 “자·타해 위험이 확인돼야 이송과 입원이 가능한 현 제도는 입원치료가 정신 증상으로 인한 위험을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한계와 모순이 있다”며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들이 범죄 피의자가 돼 수감되는 경우도 있고, 이런 일들이 반복될수록 환자들은 더 큰 편견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더 이상 정신질환자의 응급 후송과 비자의 입원 결정 과정, 외래 통원 치료의 부담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일 없이 국가에서 책임져야 한다”며 “쉽게 말하는 탈원화는 무작정 병원을 없애는 게 아니라, 병원에서 벗어난 정신질환자들의 재활, 거주 등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세밀한 준비와 구체적던 계획이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마약류 관리법에서 향정신성의약품 분리 필수=이밖에 김 회장은 마약류관리법에서 향정신성의약품의 분리가 필수적이는 입장도 내비쳤다.

지난 2000년 효율적 관리를 위해 마약법, 향정신의약품관리법, 대마법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로 통합된 이후 향정신성의약품에 대한 국민들의 오해가 쌓여 큰 문제가 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회장은 “정의를 달리하는 두 개의 다른 물질을 모호한 법테두리 안에 함께 통합하므로서 선의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향정신성의약품에 덧씌워진 마약이라는 오명으로 인해, 국민 정신건강에 심각한 위해가 발생하고 향정신성약품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정신의학적 치료의 문턱을 높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확인할 수 있고 통제가 가능한 향정신성의약품의 경우와 통제가 안되고 다른 기관에서 시스템 외의 문제로 집근해야하는 불법마약을 같은 '마약류 관리에 대한 법률'안에 통합햐 관리하는 것은 큰 모순이라는 게 김 회장의 지적이다.

이같이 향정신성의약품의 처방이 필요함에도 단순 마약이라는 오해가 쌓여 약물치료 기피 현상이 발생하고, 우울증, ADHD 등 대표적인 정신건강 질환에서조차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

김 회장은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NIMS)이 이미 의료기관에서 확고한 시스템으로 자리잡고 있으면서 과도한 처방이나 약물사용의 오류 등을 시스템에서 확인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국민 건강을 위해 향정신성의약품을 마약류관리법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