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시간 단축과 마약성 진통제 사용 최소화, 구토 적극 예방 등 여러 단계 일괄적 적용
고상욱 마취통증의학회 학술이사 “적극적 가온 장치 활용, 나이 제한 급여 한계 넘어야”

[의학신문·일간보사=오인규 기자] 전 세계적으로 수술 중 체온 유지 관리는 매우 어려운 과제로 여겨진다. 최근 글로벌에서 환자의 체온을 측정하는 방식에 대한 순응도는 50%에 미치지 않는다는 연구가 나올 정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줄곧 의료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ERAS(Enhanced Recovery After Surgery, 수술 후 회복 향상) 프로토콜은 1990년대 북유럽에서 시작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다학제적 접근법이다. 이 프로토콜은 수술 전, 중, 후의 다양한 과정에서 환자의 스트레스 반응을 최소화하고, 합병증과 입원 기간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RAS 프로토콜의 항목 중 중요한 요소가 ‘체온 유지’다. 특히 수술 중 흔하게 발생하는 저체온증이 위험한 이유는 감염 위험을 높이고 심혈관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응고장애 등 합병증 발생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회복이 더디고, 퇴원 기간이 늦어질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고상욱 대한마취통증의학회 학술이사<사진·삼성서울병원>는 의학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ERAS는 외과, 마취통증의학과, 간호, 물리치료, 영양 파트 등 다양한 의료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해 진행된다”며 “연구를 통해 이 프로토콜이 환자의 회복을 가속화하고 의료비용을 절감할 수 있음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그는 “ERAS 도입에서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마취통증의학과 내에서 이에 대한 수용 속도가 다르다는 점”이라며 “체온 관리를 넘어, 금식시간의 단축, 마약성 진통제 사용을 최소화한 통증 조절 방법, 그리고 수술 후 구토를 적극적으로 예방하는 등의 여러 단계가 일괄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한마취통증의학회는 ERAS를 더욱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확산시키기 위해 ERAS 위원회를 신설했다. 현재 15명의 위원이 활동 중이며, 마취과의사가 다른 의료 분야와 어떻게 협력해야 환자의 안전과 회복을 최적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와 실용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9일 개최되는 대한마취통증의학회 100차 학술대회에서도 메인 테마가 ERAS이다. 보건복지부와 외과를 포함한 다양한 기관과 함께 ERAS 정책 토론회, 워크샵, 강의 등이 예정됐고, 더불어 세계적인 ERAS 전문가들을 다수 초빙해 그들의 ERAS 프로토콜 설정 경험을 공유할 예정이다. 아직 시범단계이지만 한국형 ERAS 개발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상욱 학술이사는 “한국형 ERAS로 객관적인 데이터를 보여주면서, 적극적으로 가온 할 수 있는 장치들이 나이 제한 때문에 모든 환자에게 못 쓰게 되어 환자에게 합병증이 발생하게 되면 건강보험 재정 사용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홍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프로토콜을 다 적용했을 때 환자의 합병증률이 줄었다고 노력해서 보여주면 보험재정이나 보험 시스템이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실제로 수술 중에 환자의 체온이 낮아지면, 적극적으로 체온을 올리려는 노력이 이뤄지지만 환자의 체온이 떨어졌을 때 이를 올릴 수 있는 장비가 부족한 경우가 있고 표준 지침이 병원마다 다르다. 개별 병원에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기관과 가온을 위한 장비의 보급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보험제도’가 되고 있다.

가온 장비는 굉장히 다양하다. 온수매트가 가장 기본적이며, 수액을 가온할 수 있는 장치인 히티드 서켓(Heated Circuit, 가온가습회로) 제품도 사용한다.

또한 강제 공기 가온(forced air warming)은 공기를 대류시키는 방법으로 온도 조절도 가능하기 때문에 안전한 장치이다. 강제 공기 가온장치와 함께 사용하는 에어 블랭킷(air-blanket)은 환자 신체 부위마다 선택적으로 가온을 할 수 있는데, 건강보험적용 때문에 널리 모든 환자에게 사용을 못하는 게 안타까운 실정이다.

"중심 체온 안전하고 정확하게 잴 수 있는 기구 많이 도입돼야"

고상욱 학술이사는 “강제 공기 가온을 할 때 사용하는 치료재료인 에어 블랭킷은 건강보험급여 적용에 나이 제한이 있어 70세 이상과 6세 미만의 소아, 또는 심장이나 장기 이식과 같은 특정 수술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학회에서도 해결해 나가야 할 숙제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술환자는 많은 경우 저체온증으로 갈 수 있는 확률이 높기 때문에 전반적 체온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정확한 체온을 잴 수 있는 기계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중심 체온을 안전하고 정확하게 잴 수 있는 기구들이 많이 도입돼야 한다”고 기대감을 피력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고상욱 학술이사는 “결국 (핵심은) 계속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환자가 안전한 마취를 받고, 안전하게 퇴원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중요하다”며 “개개인 뿐만 아니라 학회 차원에서 회원들에게 정보와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교육을 시켜서 ERAS 프로토콜의 많은 역량을 경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줘야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체온 관리도 중요하지만 전반적인 환자를 빨리 안전하게 합병증 없이 퇴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고, ERAS가 도입된다면 다음에는 상황에 맞춰 발전시켜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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