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단체 “소비자들이 한약성분 인식하고 복용해야”
한약사회 “한약제제에 대한 명확한 정의부터 선행”

[의학신문·일간보사=유은제 기자]현행 약사법상 의약품을 분류하는 기준인 ‘전문의약품’과 ‘일반(안전상비)의약품’에서 ‘한약제제’를 따로 표기해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됐다. 이에 약사와 한약사의 의약품 취급 범위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약사사회에서는 환영하고 나섰지만 한약사회가 한약제제 분류 품목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표기해야 할 한약제제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갈등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전문‧일반의약품, 상비약 외 한약제제 분류해야

지난달 30일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최영희 의원은 약사법 일부개정 법률안 대표 발의를 통해 약사법 제56조제1항제8호 중 ▲전문의약품 ▲전문(한약제제)의약품 ▲일반의약품 ▲일반(안전상비)의약품 ▲일반(한약제제)의약품으로 분류할 것을 제안했다.

최 의원은 “현행법에 한약제제는 한약을 한방원리에 따라 배합하여 제조한 의약품으로 정의돼 한약제제는 현재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약국 등에서 조제‧판매되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의약품을 한약 성분을 포함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 용기나 포장에 ‘한약제제’라는 문구를 표기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조항은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되며 기재사항에 관한 적용은 법 시행 후 최초로 제조 또는 수입하는 의약품부터 적용한다.

의약품 중 한약제제 성분 확인할 수 없어 표기해야

한약제제 병기표기 법안 발의로 약사사회는 환영의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이전부터 약사 단체는 한약사 면허 외 판매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한약제제 병기표기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이하 약준모)는 1일 성명을 통해 한약제제 표기가 소비자들의 알권리를 충족하기 위한 최선의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약준모는 “한약제제 보험청구 시 약 26종에 해당하는 처방은 일반의약품으로 약국에서 판매되는 처방과 동일하다”며 “국민들은 한약제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해가 없이 복용하고 있으므로 용기, 포장, 설명서 등에 한약제제 표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약준모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고시와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에 의해 56종의 한약제제가 의료보험급여가 적용되고 있으며 한의원에서 취급, 판매되고 있다. 한약제제의 보험청구 현황도 지난 5년간 약 1800억 원에 달하며 그 중 약 26종에 해당하는 처방은 일반의약품으로서 약국에서도 판매되는 처방과 동일하다.

이어 “한약제제는 약사법 제2조6항에 ‘한약제제(韓藥製劑)’란 한약을 한방원리에 따라 배합하여 제조한 의약품을 말한다.”로 정의돼 있다”며 “한약과 달리 화학 성분의 의약품들과 유사하게 한방원리에 따라 표준화된 성분 및 조제법을 통해서 규격화되어 생산 및 판매되고 있으며 한의학의 과학적 사용에도 불구하고 한약제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또 한약제제 표기 의무화가 한약이 단순한 첩약 방식이 아닌 이론적 근거를 통한 표준화까지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약준모는 “한약제제 표기 의무화 법안은 소비자의 알권리를 충족하기 위한 최선의 방식으로 한약이 합당한 이론적 근거를 통해서 표준화해 충분히 치료용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확인시킬 수 있다”며 “한약제제의 인지도 개선과 한약의 과학화를 통한 한의학의 발전을 위해 한약제제 표기 의무화 법안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한약제제에 대한 정의와 품목 없이 표기할 제제 없어

이와 관련해 대한한약사회는 한약제제로 품목이 분류되지 않아 표기해야 할 한약제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약사법 제2조제5호에 따르면 한약은 동물‧식물 또는 광물에서 채취된 것으로 주로 원형대로 건조‧절단 또는 정제된 생약(生藥)이라고 정의되어 있고, 제2조제6호에서 ‘한약제제(韓藥製劑)’란 한약을 한방원리에 따라 배합하여 제조한 의약품을 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두고 한약사회는 “현재 한방원리의 정의를 아무도 모르고, 한약제제로 분류된 품목이 무엇인지도 아무도 모른다”며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표기해야 할 한약제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생약제제는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 신고에 관한 규정’에서 서양의학적 입장에서 본 천연물제제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서양의학적 입장이라는 용어의 정의가 무엇인지도 아무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한약사회는 “동네 상가 탕전실에서 물이나 주정으로 추출하고 전통 약탕기로 달이면 한방원리이고, 으리으리한 연구소 실험실에서 메탄올이나 아세토니트릴로 추출하고 합성하면 서양의학인지 자의적인 판단일 뿐 법적 정의가 아니다”라며 “현행법상 한약제제와 생약제제는 동일한 개념이 성립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법안에 ‘의약품이 한약 성분을 포함하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증상에 맞게 올바로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서’ 한약제제라고 표기하자고 언급돼 있는데 동물, 식물, 광물에서 채취해서 건조, 절단, 정제된 성분이 포함되면 모두 한약제제라고 표기하자는 것이 이 법안의 의도인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한약사회는 “몇 년 전 국회에서 상대 단체 고위자가 ‘한약제제는 용’이라고 표현해 공감한 적이 있다. 용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알지만 실존하지 않으며 모두가 생각하는 용이 다 똑같지 않다”며 “한약제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은 단순히 기존 한약 처방을 가지고 만든 의약품을 한약제제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사람은 동물, 식물, 광물 성분이 포함된 의약품을 모두 한약제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한약사, 한의사, 약사, 의사로 구성된 협의체를 마련해 한약제제에 대한 정의가 먼저 선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약사회는 “협의체가 마련된다면 한약사회는 한약의 정의, 한방원리의 정의, 한약제제의 정의, 생약제제의 정의를 정하는 데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것”이라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군가가 주장하는대로 쌍화탕, 갈근탕 등만 한약제제라고 표기하는 것은 지록위마로 혹세무민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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