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법, 응급의 법적책임 가중…예외 규정 세밀화‧환자보상보험 도입 등 제안
대한응급의사협회, 2023 추계학술대회열고 정책토론회 가져

[의학신문·일간보사=정광성 기자] 응급실 의사들이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환자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시급을 다투며 행한 의술이 민원인의 ‘소장’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환자를 거부할 수 없다는 정부 정책으로 응급의들의 법적 다툼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며,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어 이에 대한 법적 보호와 같은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응급의학회 임용수 법제이사
응급의학회 임용수 법제이사

대한응급의학회는 지난 26일 송도컨벤시아 열린 ‘2023 대한응급의학회 추계 학술대회’ 응급의료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의료계‧정부‧법조계가 법적책임으로부터 응급실 의사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이며 다양한 방안이 나왔다.

지난 2021년 119구급대 등이 응급의료기관의 수용 능력을 확인하고 응급의료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응급의료를 거부 또는 기피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의료기관의 응급환자 수용 거부와 관련해 협의체를 만들고 시행규칙에 대해 논의 중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문제는 응급실에 부담을 가중하는 법으로, 대표적으로 응급환자의 병원 전 단계에서 중증환자를 경증 또는 경증환자를 중증으로 판단하는 경우 시간 소요로 응급진료에 지장이 올 수 있으며, 수용 불가한 상황에서 환자를 수용한 병원이 모든 법적책임을 지게 될 수 있고, 응급의 역시 법적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대한응급의학회 임용수 법제이사는 “중증도 판단을 하기위해 Pre-KTAS를 개발해서 현재 119구급대에 교육을 하고 있다”며 “응급실에서 중증도를 가장 신속하게 판단할 수 있는 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 적용해보면 약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법적인 취지는 좋지만 주 증상 판단이 처음부터 틀리게 되면 일치도가 떨어지는 만큼 현실성 문제가 있다”며 “응급의가 환자도 보기 바쁜 상황에서 이로 인해 발생하는 소송을 감당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법적 보호장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는 현실적으로 환자의 골든타임은 물론 법적인 문제로 인해 필수의료인 응급의학과를 기피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법적인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것.

의사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형사 기소된 의사는 연평균 754.8명으로 매일 3명의 의사가 소송에 휘말리고 있으며, 필수의료 기피원인으로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보호 부재가 15.8%로 수가 정상화에 이어 두 번째로 나타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임용수 이사는 개정법률 항목에 세부적인 항목을 넣는 방안을 협의체에서 논의 중이라고 언급했다.

임 이사는 “협의체에서 논의가 되고 있는 대표적 의견으로 항목을 세부적으로 넣어 ‘다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한다’라는 문구를 넣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과실 책임주의’→‘보상 책임주의’ 패러다임 전환 필요

(좌측부터)응급의학회 김현 기획이사, 복지부 정혜은 응급의료과장, 중앙응급의료센터 고은실 응급의, 의협 전성훈 법제이사, 의료변호사협회 대외협력위원회 황다연 위원장

이어 법조계에서도 의료행위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가 필요하는데 동의하며, 의료과실에 대한 ‘보상 책임주의’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환자 보상보험’ 도입을 제시했다.

한국의료변호사협회 황다연 대외협력위원장은 “국내 의료소송은 과실 책임주의가 근본적으로 깔려있다. 당연한 수순처럼 환자가 사망하면 가족이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받고 싶어한다”며 “장기간 수사나 소송으로 환자 의사 양측 모두 힘들어지고 필수의료 기피 등 결과적으로 환자위험이 증가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황 위원장은 “타개책으로 피해 회복을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의료인 의료기관의 과실여부에 상관없이 의료사고 피해를 보상하는 ‘환자 보상보험’을 통해 신속한 피해자 구제 및 의료분쟁 관련 소송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환자보상보험’은 스웨덴‧핀란드‧뉴질랜드‧캐나다‧호주 등에서 운영되고 있는데, 뉴질랜드의 무과실 사고보상법이 대표적이다. 환자 피해에 대해 소송대신 공적 자금을 통해 보상해주는 제도로 독립적인 감시기관인 장애 보건‧장애위원회가 의료과실에 대한 책임을 평가해 환자의 권익을 보호한다.

그는 “의사가 고의로 환자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정말 중과실‧문제를 계속 일으키는 의사라면 감시기관이 평가를 통해 책임을 묻고, 별도 고소를 진행한다”며 “이처럼 ‘과실 책임주의’에서 ‘보상 책임주의’로 전환하고 나쁜사례는 엄격히 솎아낸다면, 환자도 환영할 것. 재정적인 문제는 추후 생각해볼 문제”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정부측에서는 구체적인 사유 규정이 실익이 있는지 선행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보건복지부 정혜은 응급의료과장은 “구체적 사유를 명시‧규정해달라는 의견이 있는데, 법률 자문 결과 케이스들이 자꾸 추가되는 수요가 있을 것이고 오히려 포괄적 적용보다 소극적으로 적용될 수 있어 현행과 같은 63조 조항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법 적용에 있어서 탄력적일 수 있다”며 “구체적인 사유를 규정하는 것이 실익이 있는지에 대해 선행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학술대회, 응급심혈관부터 닥터헬기까지 최신지견 공유

응급의학회 최성혁 이사장
응급의학회 최성혁 이사장

한편 응급의학회는 26일부터 양일간 송도 컨벤시아에서 ‘2023 대한응급의학회 추계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이번 학술대회는 ‘응급 실혈관 질환’을 메인 주제로 진행된다. 첫날 1500여 명의 회원이 등록을 마쳤으며, 연수강좌 16개‧심포지엄 9개‧구연 15개 세션 프로그램에서 구연 85편‧포스터 83편이 발표된다.

런천 심포지엄에서는 휴런‧HK이노엔‧한국 팜비오‧한국로슈진단‧벡톤디긴슨코리아‧텔레플렉스코리아 등 확회로부터 감사패를 수여받은 6개 기업이 응급의료와 관련한 최신기술들을 공유하며, 연수강좌를 통해 응급의료 사고의 예방부터 진단‧헬기이송까지 최신지견을 다룬다.

대한응급의학회 김원 회장은 “이번 학회는 현장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응급 심혈관 질환을 메인으로 그 외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최신지견과 회원들이 1년간 고생하며 쌓은 정책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라며 “학회의 핵심은 학술연구‧정책개발‧후학 양성에 있는 만큼 학회원들이 1년간 피땀흘려 만든 결과물들이 후배들에게 더 많은 선택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학술대회가 경직된 조직이 아닌 학술 등 각종 활동에서 재미를 더할 수 있는 진정한 학회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와더불어 대한응급의학회 최성혁 이사장은 응급의들의 현 상황을 언급하며 학회에 대한 지지를 부탁했다.

최성혁 이사장은 “최근 응급실에서 마음이 상하는 일들이 많이 발생했지만 이런 일들이 응급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높고 학회가 발전해나가기 위해 거쳐가는 하나의 단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결국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유지하는 게 우리의 의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사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학회원들의 권익과 국민 안전‧건강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며 “학회 임원진들이 열심히 학회회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대외적으로 활동을 해왔다. 앞으로도 적극적인 지지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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