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별로 최선의 선택지 찾는 협진은 기본, 고령 환자 특성 고려 선제적 시스템 주목
권오성 교수 “모든 스텝 빠르고 정확 ‘미니멀리즘’ 추구…지역 의료진 교육도 박차”

[의학신문·일간보사=오인규 기자] 퇴행성 질환인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한 번 발병하면 무조건 병세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 무릎이나 관절이 안 좋으면 덜 걷거나 덜 쓰면 되지만 판막은 살아있는 한 잠시 멈추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치료가 불가피하다.

평균 진단 나이가 80대 전후인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불과 15년 전만해도 수술 밖에 치료 방법이 없었고 80대의 나이에 수술을 감행할 수 있는 환자는 많지 않았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거의 치료를 포기하는 질병이 됐다.

하지만 가슴부위를 절개하지 않고 허벅지를 지나는 동맥을 이용해 판막을 교체하는 시술법으로, 수술 부담이 높은 고령 및 고위험군 환자에게 주로 적용되는 TAVI의 도입으로 시술이라는 새 가능성이 생겼고,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반가운 소식으로 다가오고 있다. ‘손 댈 수 없는 질병’이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 됐다는 점에서 판도를 크게 바꾼 대표적 시술이 됐다.

의료기관으로 확산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다. 비록 2년 반이라는 본격 시행에 있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이지만 고령의 고위험 환자에 관한 풍부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최적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은평성모병원도 TAVI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는 의료기관으로 손꼽힌다.

은평성모병원 TAVI팀의 주역인 순환기내과 권오성 교수<사진>는 본지와 만나 “무엇보다도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했던 환자에게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TAVI를 결정하기 까지 실로 어려운 과정이 있었지만 큰 보람을 느꼈던 심부전으로 내원한 89세 환자 A씨를 떠올렸다. 막상 시술을 하기로 결정하고 준비 과정에서 살펴보니 너무 어려운 케이스였다. 일반적인 케이스는 대퇴동맥을 통해 카테터를 삽입한다. 그러나 대퇴동맥을 통한 진입이 어려울 경우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진행하기도 한다.

마취 전후로 소요되는 시간을 제외하고 순수 시술 시간이 40분을 넘지 않는 대부분의 환자와 다르게 A씨는 진입 가능한 동맥 확보가 너무 어려워 이 과정에만 두 시간 이상이 소요됐다. 결과적으로 총 9시간이 넘는 대장정 끝에 성공적으로 시술을 마쳤고, 휠체어를 두고 두 발로 걸어와 외래에 내원했던 고운 얼굴을 권 교수는 기억하고 있었다.

TAVI 시술의 성공, 장비 발전도 역할 커…재질과 크기 간소화 및 고도화 기대

이처럼 TAVI 시술이 성공한 것에는 의료진의 경험치가 축적된 것도 있지만 장비의 발전이 기여한 바도 크다. 권오성 교수는 이점에 동의하며 지금까지 발전해온 것처럼 현재 불편함을 겪는 부분이 개선되는 것을 넘어 앞으로도 더욱 고도화됐으면 한다는 바램을 내비쳤다.

그는 “현재 TAVI는 진입만 하면 개흉술 보다 성공률이 높다는 것이 증명됐지만, 접근 자체가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며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것은 결국 장비의 간소화다. 재질과 크기 등의 측면에서 장비가 간소화되면 자연스럽게 접근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가격적인 측면에서도 예전에는 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확실히 금전적으로 부담될 수 있었지만, 지난해부터 건강 보험 보장 기준이 확대되며 80세 이상의 환자 혹은 수술 고위험군의 환자의 경우 확실히 부담이 거의 없어졌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권 교수는 “앞으로는 더욱 고위험군의 환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기기로 발전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며 “더불어 이엽성 판막 환자의 석회화 문제를 장비와 기술이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새로운 챕터를 열어줄 주제”라고 강조했다.

한편 은평성모병원은 서울 서북부 지역의 유일한 TAVI 센터를 운영하는 동시에 서울에서 65세 노인 환자 비율이 가장 높고 그 수도 가장 많은 병원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외과와 내과를 가리지 않고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지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과에서 함께 1차적 고민을 나누는 병원으로 평가된다.

"가능한 무리 없이" 준비 과정부터 시술, 퇴원까지 절대 헛된 손놀림 없도록

권오성 교수는 “시술이 곧 연구, 성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협진을 하기보다는 의사 개인이 가진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결정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것이 항상 환자에게 최선의 선택지는 아닐 수 있다”며 “반면 우리 팀은 협진이 정말 잘되는 팀”이라고 자신했다.

입원→시술→퇴원을 아우르는 전 과정에 고령 환자의 특징을 고려한 선제적 시스템도 마련했다. 고령의 환자는 가능한 개입을 적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권 교수는 “조금이라도 덜 건드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있다”며 “초고령 환자의 시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모든 스텝을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가능한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실제로 마취 전후에 소요되는 시간을 제외하고 순환기내과 의사의 순수 시술 시간을 40분 이내로 마무리 짓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시술하는 준비 과정부터 시술, 퇴원까지 단 한 번의 헛된 손놀림 없이 모든 스텝을 미니멀하게 진행할 것을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

더 나아가 시스템의 부재로 경기 북부에서 의료 혜택을 아직 보지 못하는 환자를 위해, 지역 병·의원 의료진을 대상으로 질병 인지를 개선하는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비단 일반인 뿐만 아니라 의료진에게도 여전히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죽음을 기다리는 병’이라는 인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치료 가능한 질병을 놓치고 있는 것은 노출이 적고 인지가 낮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보다 건강한 지역사회를 위해서 더욱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밝혔다.

또한 “환자에게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면 환자는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선택지를 알 권리가 있고, 이러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의료진의 몫이기 때문”이라며 “지역 의료진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교육 홍보 활동을 전개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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