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안치영 기자] 의료기술재평가, '기술의 가치를 다시 보다'

의료기관에서 쓰이는 의료기술들은 과연 안전할까? 새로운 의료기술이 나온다면 무조건 좋기만 할까? 새로운 의료기술이 과연 실생활에서 잘 쓰일 수 있을지 검증하는 절차가 다름 아닌 신의료기술평가제도이다.

그렇다면 과거에 들어왔던 의료기술은? 60여년 전 전쟁의 잔재 속에서 국내 의료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의료인간 선의의 경쟁 속에 의료기술은 새롭게 업데이트됐지만 학회만으로는, 체계화된 재평가 절차를 밟아나가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돈도 부족하다. 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보험료 지출은 많아지고, 생산연령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강화되지만, ‘무엇이 더 좋고 효과적인 의료기술인지’에 대한 판단은 항상 주관적이고 비용 외적인 측면을 봐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의료 현장에서조차 ‘다양한 관점에서 봤을 때, 어떤 의료기술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항상 천차만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시대에 따라 그 위치와 쓰임새가 달라질 수 있는 의료기술을 재평가할 필요성을 확인, 사업에 나서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의료기술재평가사업이다.

각각의 의료기술이 지닌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지속가능한 의료환경을 만들기 위한 작업, 의료기술재평가사업은 경직된 의료 환경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풀어줄 수 있는 촉매제로 자리메김하고 있다.

애매한 기술, 근거 중심 재평가가 기준 제시

의료기술재평가사업은 보건의료자원의 효율적 사용 도모와 의료기술의 최적사용 유도를 위해 의료체계 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의료기술에 대한 임상적 안전성, 유효성, 비용-효율성, 사회‧윤리적 영향 등 최신 근거를 구조적으로 평가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연구원서 진행한 의료기술재평가 중 일부.
지난해 연구원서 진행한 의료기술재평가 중 일부.
출처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 공식 블로그.

쉽게 말해 병의원에서 좀 더 효과적인 의료행위를 하기 위해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나서서 현장에서 쓰이고 있는 의료기술을 평가해주는 서비스다.

현재 의료기술재평가 대상은 등재급여와 선별(예비)급여, 행위비급여, 선택비급여로 나뉜다. 이미 일선 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있는 여러 의료기술(등재급여)와 환자 입장에서 상당히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의료기술들(각종 비급여와 선별 급여 등) 모두가 포함된다.

이는 두 가지 방향성이 고려된다. 재평가는 기술 발전으로 우수한 의료기술이 많이 도입됐는데 현재 비급여 영역에 놓여있는 의료기술을 건강보험급여를 적용할까에 대한 근거가 되기도 하고, 기존에 있는 의료기술이 여전히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논의의 단초가 된다.

실제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재평가사업을 통해 의료현장에서의 특정 의료기술 사용에 관한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의료기술재평가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해당 의료기술의 국내 임상현장에서의 사용을 권고하지 않았던 사례는 총 21건이다.

반면 재평가사업을 통해 비급여에서 급여전환된 의료기술 등의 항목은 총 15건이며, 이 외에도 정부와 유관기관에 평가 결과를 근거자료로 제공한 사례가 약 40건에 달한다. 한정된 인력과 예산, 시범사업의 한계성 속에서도 성과를 제시한 셈이다.

이는 정부와 관련 학회에서도 재평가의 방향성과 유용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재평가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재평가가 필요한 수요조사, 즉 어떤 의료기술에 대해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주체에 대한의학회와 대국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유관 기관이 포함돼있다.

재평가, 꼭 필요한 것인가?

대표적인 전문영역인 의료기술에서, 일반 대중이 재평가의 필요성을 인식하기에는 여러 난관이 있다. 생활친화적이지도 않고, 공감대가 없으며, 그나마 공유할 수 있는 이슈는 가격 이슈와 안전성 논란 뿐이다. 이마저도 단편적인 지식과 정보사항 정도로 축약되어버린다.

전문적인 영역에서의 재평가는, 그래서 이용자와 평가자가 동일하다는 특수성을 내포한다. 현재의 의료시스템은 시장경제와 공공의료의 중간에서 향상성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속에, 의료기술은 이용자의 관점에서 평가되고 이른바 경제성의 논리 속에서 활성화된다. 자가 평가는 항상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전문가의 책임성’으로 막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일반 국민에게 재평가는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재평가 필요성을 좀 더 ‘모두가 함께 하는 고민’으로 가져가려면 인류가 걸어온 역사 속에서 그 답을 찾는 것이 빠르다. ‘기술 발전에 따른 사회상의 변화 과정과 그 담론’을 제시하는 방법이다.

의료사적인 측면으로 말하자면, 산욕열로 얼룩졌던 100년 전의 의료시스템은 재평가의 필요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제도권 의학’을 무시한 제멜바이스가 손씻기를 통해 산욕열을 줄일 수 있다며 학술활동을 펼쳤지만, 그는 개인이었고 일개 연구자여서 동료 의사들에게 매도당했다. 제멜바이스의 이론이 의료 현장에 광범위하게 전파되기 시작한 시점은 그가 산욕열과 같은 기전인 패혈증으로 죽은 이후다.

위의 사례처럼 좀 더 많은 생명을 살리고 환자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명제는, 자가 평가라는 틀 속에서 그 변화가 늦춰지거나 외면당할 수도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진행하는 재평가 사업은, 의료계와 협력해 국민 중심으로 생각하는 ‘공공기반 재평가’라는 점에서 신뢰성을 더하고 안정적인 보건의료체계에 기여할 수 있다.

재평가 시스템의 방향성-제도권 도입을 통한 선순환 구조 마련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고려 중인 의료기술재평가 기본체계도(안)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고려 중인 의료기술재평가 기본체계도(안)

아직까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의료기술재평가사업을 시범사업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법적 근거가 부족한 탓이다.

일단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는 법령 정비 등을 통해 의료기술재평가사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료기술재평가위원회 심의결과와 정책적 결정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양질의 의료기술이 환자들에게 제공될 수 있도록 의료계와 협업하겠다는 취지다. 아울러 적합성평가위원회와의 명시적 연계를 통해 현재 선별급여에 대한 .재평가 방식을 고도화 하겠다는 의지도 갖고 있다.

물론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숙제도 있다. 재평가의 주기적인 모니터링 시스템을 마련하고 평가방법을 고도화해야 한다는 점 등이다.

재평가 방법에 RWE(임상·학술이 아닌 실제 환자 적용 근거, 실증근거)등을 도입하고 의료기술재평가사업 내 환자 참여의 폭을 넓히는 방안이 필요하다. 다른 분야보다 복잡하고 지표 생성이 어려운 의료기술에 대한 비용-효율성 을 확인하는 방식도 좀 더 경험을 쌓아 나가야 한다.

특히 비용-효율성 이슈는 의료기술의 재원, 즉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과도 직결돼있다.

지난 2017년부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과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 ‘비급여의 단계적 급여화’ 정책 등이 추진되면서 건강보험 재정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계속됐다. 일 년 벌어 일 년 쓰는 단기보험이긴 하지만, ‘내가 낸 건강보험료로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있다. 실제 2000년대 초반엔 정말로 ‘부족했던’ 적도 있었다.

아직까진 재평가 시스템이 비용효용을 우선으로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역량이 쌓이게 되면 좀 더 보건의료시스템에서 비용효과성이 있는 의료 기술을 제안할 수 있는 미래도 맞이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이슈들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제도권에 들어가야만 이뤄질 수 있는 것들이다. 보의연 관계자는 "결국 의료기술재평가사업이 법적 근거를 갖고 정위치에서 제대로 기능해야할 것이며, 이는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시스템 확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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