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년 6개월 만에 입법 예고···개정 4주, 본회의 하루 앞두고 공청회 졸속 진행
의료계 “제한 없는 낙태 기간은 10주 이내, 약물 낙태는 의사 관리 하에” 주장

[의학신문·일간보사=진주영 기자] 불과 며칠 남지 않은 ‘낙태죄’ 개정 시한. 올해 말까지 입법을 마련해야 했지만, 이미 정기국회는 종료됐으며 개정 논의는 표류 중이다.

지난 2012년 합헌 결정을 받았던 ‘낙태죄 처벌 조항’은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다시 한번 받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국회에 오는 12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시한 불과 세 달을 앞둔 1년 6개월 만에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할 수 있지만 임신 15~24주에는 조건부로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 등을 담은 입법예고안을 내놨다. 낙태죄 개정을 위한 공청회는 개정 시한까지 약 4주, 정기국회 종료를 하루 앞둔 지난 8일 열렸다.

당장 연말까지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2021년 1월 1일부터 낙태죄 처벌 조항은 자동으로 효력은 상실된다.

즉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한 형법 269조 1항과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형법 270조 1항이 자동으로 소멸된다.

정부 입법예고안의 내용은 이렇다. 모자보건법에서 규정한 5가지 조항에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추가, 임신 24주 이내의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는 모자보건법이 정한 전문가 상담과 24시간 동안 숙려 기간을 거치도록 했다.

또한 현행법 체계는 형법과 모자보건법으로 이원화돼있지만 낙태의 허용 요건 조항을 신설해 처벌·허용 규정을 일원화했다.

이 외에도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던 배우자 동의 요건을 없앴고, 만 16살 이상의 경우 불가피한 경우 상담사실확인서만으로 시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자연유산 유도약물 등 낙태약도 합법화됐다.

이 같은 개정안이 발표된 뒤, 여성계, 종교계 등에서 낙태죄 존폐를 놓고 찬반 대립은 더욱 심화됐다.

여성계는 낙태죄 전면폐지를 주장하며 맞서고 있으며 종교계에서는 낙태죄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국회는 양측 그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54개 단체로 구성된 행동하는 프로라이프는 “보건복지부는 유관학회와 정당 등의 토론회 참석과 여성, 의료, 법조, 종교 등 각계의 동향 모니터링, 부처 합동 의견수렴 등을 통해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입법안을 내놓았다고 했으나, 개선입법 내용의 대부분은 사회적 합의 없이 졸속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의료계 “임신 10주 이내로···낙태 약물, 의사 관리 하에”

의료계는 여성의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산부인과 등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모체태아의학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 신부인과단체들은 제한 없는 낙태 기간은 24주가 아닌 10주 내로,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는 22주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산부인과단체들은 비의학적 사유의 낙태 허용은 비교적 안전하며 태아 검사가 어렵고 대부분의 낙태가 이뤄지고 있는 ‘임신 10주 미만’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해왔다.

최안나 대한산부인과학회 낙태법특별위원회 간사는 “임신 10주 미만의 태아는 발달이 일정해 초음파 검사로 정확한 임신 주수 측정이 가능하고 임신 10주부터 태아 DNA 선별검사를 포함해 광범위하게 태아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며 “우리나라 의료현실을 감안해 의학적 개입이 이뤄지기 전인 임신 10주 미만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언급했다.

특히 이들은 낙태 약물에 대해 약국 처방을 금지하고 투약 결정부터 유산 완료까지 의사의 관리 하에 사용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학회 회장은 “수술적 낙태도 약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약물을 통한 낙태와 수술적 낙태는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의 시스템으로 봐야한다”며 “약물 낙태는 투약 결정부터 유산의 완료까지 산부인과 의사의 관리 하에 사용돼야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낙태죄 관련 논쟁은 의료계와 종교계, 여성계 등에서 각각 다른 이유로 정부안에 반대하며 난항을 겪고 있다. 개정 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낙태죄 법안은 과연 성과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는 법적 테두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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