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개 주서 법안 통과 미지수, 프랑스선 논의 없어
의료인 사익 대비 설치 따른 공익 크다는 반대 주장도

[의학신문·일간보사=한윤창 기자]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는 의사-환자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탓에 선진국에서 법제화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안덕선 소장.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29일 용산임시회관에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무엇이 환자를 위한 진실인가?’라는 제목으로 주최한 포럼에서 의료계 관계자들은 CCTV 설치 의무화가 불필요한 감시를 유발하고 환자의 비밀을 유출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포럼에서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은 CCTV 설치 의무화에 따라 예상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안 소장은 “수술실 CCTV 의무화는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없는 사례고 불필요한 감시를 조장하는 동시에 자율 발달을 저해한다”며 “미국의 1개 주에서 논의 중이지만 법안통과가 미지수고 환자 비밀 유지의 문제가 있다”고 경고했다.

해외 입법례와 관련해 안 소장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근로자의 감독을 위한 CCTV 설치가 금지돼 있고, 노조에 사전 설치계획 통보 의무가 있다. 더불어 촬영이 인간의 존엄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경우 노조와 재차 합의해야 한다. 수술실 CCTV 설치는 논의가 된 바 없고 비밀유지는 환자의 절대적 권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수술실에서 CCTV 설치가 의무화된 곳이 없다. 의료질적 평가 1위인 위스콘신 주에서는 유방확대술 중 부분 마취제 과다 투여로 환자가 사망한 사고가 있었고, 이에 따라 수술실 CCTV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통과 불가로 폐기됐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도 위스콘신주에서와 유사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않은 사례가 있다.

안 소장은 CCTV 설치 의무화 법안 통과 시 환자 비밀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제시했다.

그는 “비밀보장은 의사의 최우선적·보편적 직무 윤리이고, 비밀유지는 환자와 의사 관계에서 신뢰 구축의 바탕”이라며 “의사는 환자의 정보에 대해 사후에도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 소장은 “2003년 유럽연합 인권협약에 따르면 개인과 가족의 비밀유지 조항이 있고 의무기록을 포함해 모든 개인정보 보호는 개인과 가족의 사생활 영위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적 사안”이라며 “이런 논의가 자주 나오는 이유는 정보가 유출되기 쉬운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발표 말미 결언을 통해 그는 “최근의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이슈는 일부 비윤리적 사건·사고로 위협이 증복·확대·재생산된 것이고 정치적 의제로 다시 확대·재생산된 결과”라며 “CCTV를 설치하게 되면 환자 비밀 누설과 전파의 위험이 있고 수술실 업무 효율성 방해 가능성이 농후하다. 의료 과오 방지 효과는 미미할 것이고 불필요한 재원은 늘어나게 된다. 오히려 감사 체제 하의 방어적 의료가 유도된다”고 비판했다.

안 소장의 발표 이후에는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부대표 서영현 변호사가 ‘수술실

CCTV 설치를 둘러싼 법적 쟁점과 필요성’을 주제로 발제를 이어갔다.

서 변호사는 CCTV 설치에 따른 쟁점을 제시하고 설치의 필요성을 중점적으로 제시했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침해 문제’에 대해 그는 “설치 의무화 법안의 기본 전제는 침해가능성이 가장 높은 환자의 동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설치의 공익이 의료인의 사익보다 크다”고 말했다.

‘정보유출 문제’에 대해서는 “어린이집의 경우도 네트워크 카메라는 해킹의 위험 때문에 촬영을 못하게 돼 있다”며 “관리를 굉장히 철저히 하고 보존기간을 설정하는데다 누구나 요청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특정인이 특정 목적으로만 요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 서 변호사는 ‘수술실 인력의 편의적 운용의 어려움’에 대해 “편의적 운영의 여지가 없어지면 수술이 밀릴 가능성이 있고 환자들은 예상하지 못한 수술지연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병원의 경우 인력을 충원해야 하는 문제가 있고 수술시 집도의, 전공의, 간호사, 마취과 의사 다 있어야 하는 부담이 노출돼서 병원의 운영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의료기기 공급자 수술실 참여 문제’에 대해서는 “관계자 출입, 역할 한계를 환자에게 알리고 사전동의를 받게끔 하려고 노력하는 미국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주제 발표에 이어서는 임기영 아주대 의대 교수의 사회로 패널토론이 진행됐다.

패널 토론.

김연희 변호사는 불신사회 확대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환자와 의사의 계약관계는 위임관계고 CCTV 설치 의무화는 위임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라며 “강제화되면 단기적으로 범죄를 막을 수 있겠지만 불신을 더 가중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희정 고대 법전원 교수는 “수술활동을 촬영해 외국의 의료진과 실시간 컨퍼런스로 공유하는 사례가 있다는 점에서 CCTV 촬영이 의료행위에 절대적인 방해는 아니다”라면서도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높은 의료수준을 지탱해 온 의료인이 자율적인 전문성에 의존해 오던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변경하는 접근을 채택하기 전에 여러 대안이 되는 수단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세라 의협 기획이사 겸 의무이사는 “공공병원 내지 상급종합병원 등 몇몇 병원에 시범적으로 CCTV를 설치하는 데는 동의한다”면서도 “문제는 공공 병원들에 CCTV를 설치하면 적자폭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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