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수술 후 뇌 손상 발생 환자 병원 상대 손해배상청구 기각

[의학신문·일간보사=이재원 기자] 수술 후 후유증을 앓게 된 환자가 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에서 법원이 환자의 청구를 기각했다.

개연성이 담보되지 않는 사실로 의사에게 과실의 책임을 지게 할 수 없으며, 최선의 조치를 다한 상태에서 합병증이 나타난 것이라면 의료행위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결 취지다.

서울 고등법원 2심 민사재판부에 따르면, 환자 A씨는 서울 강북소재 B병원에서 우측 고관절 관절경 하 관절구 돌출 제거수술을 받았다. B병원 의료진은 수술 중 국소마취제인 부피바케인을 주입해 척추마취를 시행했으며, 같은 날 오후에 미다졸람,프로포폴,펜토탈,프로포폴 순으로 각각 2~3회 가량 진정수면제들을 투여했다.

이어 오후 4시부터 B병원 의료진은 혈압강하제인 페르디핀을 주입해 A씨의 혈압을 강하시켰으나, 4시 50분경부터 A씨에게 심정지 등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B병원은 아트로핀과 에피네프린을 주입했으며 기관심관 및 인공호흡을 시행했다.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A씨에게 심전도상 심실 빈맥이 발생하자 심장세동을 실시했고, 이후 엠부베깅(수동 인공호흡)을 실시하면서 A씨를 인근 대학병원으로 전원했다. 현재 A씨는 대학병원 심장내과 재활의학과 등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기질성 정신장애가 발생한 상태이며, 허혈성 뇌손상으로 인해 뇌기능 저하가 심각한 상태로 진행된 치매 수준이다.

이 같은 B병원의 수술과정에 대해 A씨는 △국소마취제의 부적절한 투여 △알코올 의존성 환자에게 금지된 수면진정제들을 사용한 것 △진정,호흡억제,혼수상태를 일으키는 벤조디아제핀계 약물과 아티반 안정제 혼합투여 △수면진정제 과다 투여 △마취 제 투여에 따른 경과관찰을 소홀히 한 것 △호흡부전 상태 시 즉각해야했던 전기충격기 사용 등 응급처치가 늦은 점 등이 현재의 뇌기능 장애를 발생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A씨는 B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진행했다.

B씨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먼저 A씨의 체격에 비추어 국소마취제가 적절한 용량이 사용되었다는 타 병원의 감정과 함께, 국소마취제 투여 후 상당한 시간차를 두고 사건이 발생한 점 등을 근거로 국소마취제의 부적절한 투여가 실시됐다는 A씨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알코올 의존증 환자에게 미다졸람,펜토탈 등의 수면진정제가 금지되는지에 대한 여부에서, 재판부는 사용에 주의를 요할 수 는 있으나 알코올 의존증 환자에게 절대 투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약물은 아니라는 감정결과를 근거로 A씨의 주장을 기각했다. 이어 벤조디아제핀계 약물과 병용투여 시 사망의 위험성을 증가시키는 것은 아티반과 동일계열인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인 미다졸람이 아니라 마악류로 보이므로, 아티반과 미다졸람의 병용투여 자체가 금지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진정제 과다투여 과실여부에 관해서는 알코올 의존증 병력이 있는 환자의 경우 임상의학적으로 수면진정제 투여 요구량이 증가된다고 알려져있으며, 이에 따라 B병원이 A씨가 수술 중 프로포폴 등의 투여에도 진정되지않아 다시 여러차례 진정제들을 투여했다는 B병원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어 사용된 수면진정제들 모두 감정을 통해 과다투여되지 않았다고 재판부는 판결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척추마취부터 수술종료까지 5분 간격으로 A씨의 호흡상태,맥박을 B병원이 체크하고 기록해 두었으며, 수술 종료 후 A씨가 급성 호흡부진 등의 이상증세를 보이자 즉시 A씨에게 조치를 취했던 점을 고려할때 경과관찰 소홀의 과실여부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응급처치상의 과실과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심정지 시 에피네프린을 반복해서 투여한 점 등을 고려해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 고등법원 2심 재판부는 "의사의 과실로 인한 결과 발생을 추정할 수 있을 정도의 개연성이 담보되지 않는 사정들을 가지고 막연하게 의사의 과실과 인과관계를 추정하고 의사에게 무과실 입증책임을 지울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부는 "의료행위 결과 후유장해가 발생했더라도 그 후유장해가 당시 의료수준에서 최선의 조치를 다한 상태에서 합병증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거나 합병증으로 인해 2차적으로 나올 수 있다면, 후유장해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의료행위 과정에 과실이 있다고 추정할 수 없다"고 덧붙여 말했다.

이러한 근거에 따라 2심 재판부는 A씨의 패소를 판결했던 1심재판과 결론을 같이해 B병원을 대상으로 한 A씨의 손해배상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