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재협상 결과 혁신신약 조건 강화로 유명무실화
제약업계, '신약개발 의지에 찬 물' 강력 반발

[의학신문·일간보사=안치영 기자]올 연말 제약계는 복지부로부터 비보를 접했다.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 우대제도’ 개정안이 발표되면서 혁신 신약의 조건이 ‘거의 달성 불가능한’ 수준으로 올라갔다는 내용이었다. 정부가 적극 추진했던 신약 개발 장려 정책이 2년 만에 물거품 되는 순간이었다.

혁신신약 약가우대 제도는 제약사가 신약을 개발할 때 조건을 충족하면 약가의 10% 가량을 높여 받을 수 있는 제도로 2016년 7월 정부가 신약에 대한 가치를 우대해 국내 제약사들에게 연구개발에 대한 동기를 유발하기 위해 시행됐다.

2016년도에 발표된 내용만으로 보면 정부 조치는 제약사의 신약 개발 열정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정부는 대체약제 최고가의 10% 가산과 국내에서 세계 최초 허가받은 혁신신약(항암제 등)의 경제성 평가 면제, 건보공단 약가 협상기간 30일로 단축, 환급제 등을 통해 특허기간까지 약가인하 유예 등의 혜택을 약속했다.

문제는 혁신신약 선정 기준이었다. ‘무엇을 혁신 신약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으로 인해 정부는 제도 개정안을 여러 차례 준비하고 바꿨다. 기업의 사회적 기여도 등도 조정 대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다국적제약사는 국내 기업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신약 약가 제도의 신약 선정 기준에 불만을 표출했다.

이 문제는 결국 통상 마찰로까지 번지게 됐다. 미국은 지난 4월 농업 및 철강에 대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수입 신약 가격책정 제도의 보완을 요구하고 나섰다. 다국적제약사들은 그동안 정부가 세운 글로벌 혁신신약 기준과 지원책 등이 국내사에게 유리하다며, 기회가 있을 때 마다 개정을 요구해 왔는데 결국 이번 기회를 통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조건으로 요구안을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을 펼쳤다.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 국내 의약산업계에선 정부가 제도 자체를 폐지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제약업계의 한참 불 붙고 있는 신약개발 의지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결국 정부는 지난 10월 혁신신약 기준을 변경한 안을 내놨다. 이는 한미 FTA 개정 협상시 양측 정부는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우대제도’를 한미 FTA에 합치하는 방향으로 개정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특히 제품요건은 △새로운 기전 또는 물질 △대체 불가능한 치료법 △생존기간의 상당한 연장 등 임상적 유용성 개선 입증 △미국 FDA의 획기적의약품지정 또는 유럽 EMA의 신속심사 적용 △희귀질환 치료제 또는 항암제 등 이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이같은 조치를 두고 국내 제약업계는 모든 기대가 무산됐다는 입장이다. 국내 진출해 있는 다국적제약업계의 코치를 받았음이 분명한 미국 측은 제도의 무력화에 나섰고, 예전 한미FTA 비준당시 제약산업을 희생양 삼았던 정부는 이번에도 미련 없이 제도의 유명무실화로 그들에 화답하며 국내 제약업계의 희망의 싹을 잘라버렸다는 평가다.

일단 복지부는 아직 개정안 형태이므로 의견 수렴 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같은 결정마저도 차일피일 미뤄질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분간 제약 업계는 약가 우대를 받는 신약 개발의 꿈을 접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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