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협, 전국 보건소·보건지소 근무자 진료·처방 요구 사례 조사 공개
일반의에게 안과·치과·정신과 등 진료 요구도…업무범위 재조정 필요성 대두

[의학신문·일간보사=정윤식 기자] 전국 공중보건의사 10명 중 6명이 능력 밖의 진료를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반의에게 안과, 치과, 정신과 등 역량을 벗어난 진료가 요구되고 있는 것.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이하 대공협, 회장 송명제)는 최근 ‘전국 보건소 및 보건지소 근무자 무분별 진료 및 처방 요구 사례’를 조사, 이를 기반으로 보건소 및 보건지소의 진료 기능 축소를 포함한 보건기관의 실정에 맞는 업무 범위 재조정 필요성에 대해 6일 주장했다.

이번 조사는 보건소와 보건지소 근방 민간의료기관의 진료 기능이 중첩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성을 확보하겠다는 명목으로 부적절한 진료를 요구받고 있는 사례를 수집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됐다.

아울러 공공의료자원으로 배치된 공중보건의사의 역량을 진료 부문에 집중시키는 것이 옳은지 살펴보기 위한 이유도 포함됐다.

제보된 70건의 사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0%에 해당하는 일반의와 인턴 과정을 수료한 공중보건의사 중 61.9%가 본인 능력 이상의 진료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응답자 중 28.6%는 전문의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환자를 전원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 측의 강한 거부 및 소속 기관으로의 민원 제기 등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진료를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대공협은 “불가피한 진료의 구체적 사례를 들여다보니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아님에도 흉부 엑스레이를 판독하는 사례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급여 대상자가 약제비 면제를 위해 일반의약품 처방을 강요하고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부터 토혈로 내원한 환자에게 문진 중 응급 질환이 의심돼 내과 전문 의원을 찾을 것을 권유했으나 아무 약이나 달라며 거부하는 사례 등도 있는 것.

대공협은 “인근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건사업 실적을 위해 일반의에게 영유아 검진을 맡기거나 보건의료원에 배치된 일반의에게 안과, 피부과, 응급의학과 등의 진료를 보도록 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대공협은 전문 인력의 원활한 수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과목에 맞지 않는 자원을 배치하는 것이 공공보건의료기관 진료의 질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다.

보건(지)소에 근무하는 전문의의 경우에도 형태는 다르지만 ‘능력 이상의 진료’를 수행하고 있는 점은 동일한 상황인 것으로 조사됐다.

설문에서 전문의 응답자의 75%가 다른 전문영역의 진료를 보고 있다고 답했으며, 특히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아님에도 결핵 검진 영상 판독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도 다섯 명 중 한 명으로 나타났다.

즉, 대공협은 의료의 질 평가를 위해 민간의료기관에 많은 노력을 요구하는데 반해 지역보건의료의 공공성을 살리기 위해 설치된 보건소 및 보건지소 의료의 질은 잘 유지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대공협은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마다 교체되는 의료 자원으로 진료의 연속성 및 높은 의료 질의 지속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진료 제공’을 명목으로 하는 보건소 및 보건지소의 기능을 지역 민간의료기관으로 상당 부분 이관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공협은 이어 “무분별하고 부적절한 진료는 의료 빈틈을 채우려다 오히려 빈틈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며 “보건기관 본연의 업무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업무 범위를 명확히 설정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한편, 대공협은 이번 조사결과와 앞서 조사된 ‘전국 보건소 및 보건지소 근방의 민간의료기관 분포현황’를 시작으로 올해 하반기에는 ‘보건소 및 보건지소의 진료적정성평가’를 대대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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