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원장 ·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나는 이 의술을 가르쳐 준 스승을 부모처럼 여기고, 나의 삶을 스승과 함께 하여 그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나의 것을 그와 나누며, 그의 자손들을 나의 형제로 여겨 그들이 의술을 배우기를 원하면 그들에게 보수나 계약 없이 의술을 가르칠 것이며, 내 아들들과 스승의 아들들 그리고 의료 관습에 따라 선서하고 계약한 학생들에게만 교범과 강의와 모든 가르침을 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하지 않겠습니다.”

의사 윤리와 정신을 포함한 의학의 핵심 문서이자 일종의 동업자 협약같은 것을 담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앞부분이다. 선서가 만들어진 BC 5세기를 의사집단이 혈연공동체에서 계약 공동체로 전환되는 시기로 본다. 이 문구를 통해 의학 교육이 대표적 도제제도(apprenticeship system)의 효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제교육제도는 유럽 중세도시의 상인이나 수공업자, 의사들의 동업조합이었던 길드(guild) 제도로 발전하게 된다.

길드 내에서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서는 장인의 제자로 들어가 견습, 직공을 거쳐 장인이 될 때까지 숙식을 하며 일을 배웠으므로 인간적이고 절대적 관계로 얽히게 된다. 도제교육을 통해 배운 지식과 술기를 배워가며 차츰 자신의 직업에 대한 긍지와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전문가로서 독립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의학 전문직업성 교육이 인지적 도제교육(cognitive apprenticeship)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과거로부터 있어 온 도제교육의 의미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인지적 도제교육은 이해(understanding)와 판단(judgment) 그리고 책임감(responsibility)이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로 이루어진 ‘도제교육’으로 진행된다. 인지적 도제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먼저 전문 의학지식의 특성과 개념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받는다. 그 후 임상실습을 통해 의사로서 진료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의사가 가져야 할 책임감을 알아가게 된다. 학생들에게 실제 진료하는 것처럼 임상실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학생들이 자신의 임상실습을 증진할 수 있도록 피드백을 함으로써 실습 학생들에게 실제로 ‘의사가 된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경험을 하게 한다.

이해·판단·책임감 강화 과정

첫째, 인지적 도제교육과정은 이해(understanding) 과정이다. 과학적·분석적 사고방식에 초점을 둔 학구적 혹은 지적 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의학 분야의 학문적 기반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갖게 하고, 전문직에 대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마음 자세를 이해하도록 교육한다. 주로 강의실과 실습 현장 강의를 통해 교육이 이루어진다.

학생의 역할을 강화하고 시험을 통해 일반적인 지식과 추론을 평가하게 된다. 이러한 이해과정은 임상 교수와 학교 그리고 전체 의사 집단이 가지는 지적 가치와 연결해주기 때문에 실제 임상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또한 이러한 요소는 대학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교육과정에도 적용된다.

둘째, 인지적 도제교육과정은 학생의 판단력(judgement)을 강화하는 판단 과정이다. 실습생(apprentices)인 학생은 숙련된 의사로부터 무언의 술기를 배운다. 학생은 완전히 다른 교수법을 통하거나 종종 다른 교수진으로부터 첫 번째 도제교육과정에서 소개된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술 기반 학습(skills-based kind of learning)을 접하며 전문가다운 판단 능력을 키워간다. 이 단계에서 독특한 면의 하나는 전공의의 역할이다. 의사는 배우면서 또한 가르치는 선생의 역할을 하는 독특한 직종이다. 전공의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 역할과 전문직의 가치와 진료행위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점차 환자에 개입하면서 그 결과에 책임을 져가게 된다.

셋째, 인지적 도제교육과정은 전문직으로서의 책임감(responsibility)을 갖게 하는 단계이다. 전문직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책임감을 가진다는 것은 의사가 되는 데 매우 중요한 핵심 요소다. 전문직 집단에서 공유되는 가치와 특성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의학 교육에서 이러한 면은 학생이나 교육자 모두에게 의학 전문직업성에 대한 이해를 높여준다.

첫 번째 인지적 도제교육과정과는 달리 전문가로서 가져야 할 판단력과 책임감은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서만 잘 배울 수 있다. 의사라는 전문직으로 성장한다는 진정한 의미는 진료 행위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일임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의술의 목적은 전문지식과 술기를 공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의사는 의료 행위가 가지는 이 의미를 체계적으로 잘 이해해야 한다.

전문직으로서 뿐만 아니라, 시민으로서도 사회 보건을 이끌어 나가는 봉사자와 리더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은 오늘날 한국 의사들에게 있어서 가장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다.

교육자, 제자의 롤모델 돼야

도제제도라는 틀 안에서 뛰어난 지식과 술기를 지닌 교육자는 배우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롤모델이 된다.

도제교육은 교육자의 생각과 철학, 감정 표현 방법까지도 배워가는 독특한 과정이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나온다. 배우는 사람에게 가르치는 사람의 역량이 얼마나 바르고 뛰어나냐에 따라 좋은 의사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불량 의사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고대 히포크라테스 시대에서도 그랬듯이 이런 도제교육이 의학 교육 내에서 잘 활용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다. 교육자와 피교육자 간에 지켜야 할 윤리이다. 전문가 집단답게 올바른 스승을 존경하고 올바른 제자를 배려하고 존중해 주는 성숙한 교육 문화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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