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원장 ·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사회는 의사가 고도의 치료 수준과 윤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믿고 의사에게 전문가적 재량권(professional autonomy)과 자율 규제권(self-regulation)을 인정한다. 의사들이 의학 전문직업성을 잘 유지하고 표현할 것이라고 믿고, 독점적 권한인 면허를 주는 것이다. 의학 전문직업성이 사회와의 암묵적 계약을 이루게 하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사회와의 약속은 의사나 환자 모두 그것을 잘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성을 갖출 때 비로소 지켜질 수 있다.

면허는 상호 책임이 동반되는 사회계약의 공식적인 표시다. 일부 의사들은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딴 면허를 누가 감히 건드릴 수 있냐’고 생각한다. 의학 전문직업성과 면허와의 관계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온 결과다.

전문직으로서 부여받은 권한과 특권은 이타심과 인격적 통합성(Integrity)을 가지고 사회에 봉사하라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의사들은 의학 전문직업성을 뼛속까지 체화시켜 나가야 한다.

의학 전문직업성으로 체화된 의사가 되는 길은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가는 한 방향으로의 움직임이 아니다.

의술에 대한 전반적인 감각과 목표를 이해하고 교양을 기르는 일련의 반복적 교육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교육을 통해 의학을 과학 이상으로 인지하고 행동하게 해 준다. 철학적인 요소가 깊이 관여된다. 히포크라테스 전집에서도 “의학교육은 의학을 넘어 철학적 수련까지 요구해야 한다”라고 했다. 철학적으로 의술이라는 존재가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전문직업성을 통해 가치가 표현되는 과정이다.

의료는 진단과 치료 행위가 철저하게 과학을 사용하는 활동이긴 하지만, 그 자체가 과학만은 아니다.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복합적인 치유 행위”라는 것을 알고, 실제로 실천하는 역량을 갖추게 해 준다. 이제 막 전문성을 길러 나가고 있는 의대생뿐 아니라, 전공의와 기성 의사들에게도 연수교육을 통해 반복적이고 연속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학생들과 의사들에게 다양한 분야의 이론, 실습, 환경 그리고 그들이 직면하면서 배우는 학습 형태를 통합시켜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의학 전문직업성 개념 정립 필요

40대 이후 대한민국 기성 의사들은 의학 전문직업성에 대해 전혀 들어 보지도 교육받지도 않은 세대다. 이들에게 개념 정립을 위한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의학 전문직업성에 대해 교육을 받은 의사들도 반복해서 이론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교육받을 당시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각 시기별(의대생, 전공의, 임상의)로 맞닥뜨리는 문제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을 바로잡아주고 넓혀 주기 때문이다.

학부과정(BME Basic Medical Education), 졸업 후 교육과정(PGME Post-Graduate Medical Education), 연수교육(전문직업성 평생 개발 CPD, Continuing Professional Development)을 통해 의학 전문직업성에 대한 개념과 특성을 잘 숙지하고 실제 상황에 적용시켜 보고자 하는 의욕을 가지도록 학습과정이 준비되어야 한다.

특히 학생과 전공의를 교육하는 교수들에게 의학 전문직업성에 대한 이론과 교육 방법을 배울 특별한 교육과정이 제공되어야 한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듯이 교수의 직책에 오르면 전문직업성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의대생이나 연차가 낮은 전공의는 교수나 선배 전공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통해 배우고 따라 한다. 이러한 학습과정을 ‘비정규 혹은 암묵적(informal or hidden)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이론에 대한 강좌식 교육이 이루어진 후에는 의학 전문직업성 이론을 실천으로 옮겨 발휘되도록 이끌어 주는 과정이 따라와야 한다. 주로 사례 기반 추론 방법(case-based reasoning)을 통해 실제 의학 전문직업성을 적용시켜 보는 교육을 시행한다. 실습을 통해 성취해야 할 목표와 가르쳐야 할 내용까지도 최대한 알기 쉽게 전달돼야 한다. 이를 위해 실습과 실습에 대한 피드백, 평가와 자기성찰 등이 필요하다. 이런 일련의 실습과 교육과정을 통해 배운 것을 깨닫고 인식하게 되며, 상상력을 발휘해서 행동으로 나타나게 해 준다. 사례 기반 추론 방법을 통해 의사의 인지(perception), 추론(reasoning) 그리고 판단력(judgment)을 확장해주고 깊이 있게 해 준다. 학부과정과 전공의 수련과정에서 사례 기반 추론 학습 프로그램이 많이 계발되어 시행되고 있다. 이런 교육이 의학 교육교실의 소수의 교수들에게 의해서만 진행되어서는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의학 전 분야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의학 전문직업성 체화 주목적은?

의학 전문직업성을 체화하는 주된 목적은 의사들이 자기개발을 위한 자기성찰을 하고, 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다. 어떤 상황을 만났을 때 어떻게 결정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량 강화 교육을 통해 의사가 사회적으로 유용하고 개인적으로도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선은 행복”이라고 했다. 의사가 사회와 자신에게 인정받는 가장 큰 행복은 Good Doctor가 되는 일이다. 의학 전문직업성을 잘 구현하는 의사를 Good Doctor라고 한다. Good Doctor는 사회로부터 신뢰와 존경이라는 큰 선물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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