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태
한국유나이티드제약
글로벌 개발본부 전무

[의학신문·일간보사] 우리가 필요한 물건에는 가격이 매겨진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수요가 많아지면 가격이 오르고, 공급이 과잉되면 가격은 내려가기 마련이다. 계란도 어느 날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어 사 먹기를 꺼리면 가격이 폭락했다가, 다시 수요가 회복되었을 때는 축산농가가 줄어서 수급에 난리가 난 적도 있었다.

의약품의 경우도 신종플루가 예상되는데, 국내에는 독점제품만 있다면, 창궐할 때 예상되는 폭발적인 수요에 빨리 대응하기 위해 긴급조치를 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논란이 된 적도 있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모두 가격의 문제이다.

다른 상품처럼 의약품의 가격도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서 수많은 변동을 거친다. 정부가 급여를 실시하는 경우는 정부가 가격을 결정하고 변동하는 구조이다. 신제품의 경우 기존에 사용하던 약물과 비교하여 효과가 더 좋은지, 완치율이 더 높은지, 하루 세 번 투여하던 것을 한번만 투여해도 같은 효과인지 등등 약물의 경제성을 평가해서 가격을 결정한다.

그런데 경제성평가라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인유두종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 중 일부가 자궁암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발병한 자궁암환자의 치료비용과 미리 대상여성에게 감염예방백신을 투여하는 비용이 엇비슷하다면 예방백신을 급여화 해야 하나’ 처럼 복잡한 방정식이 된다. 새로 개발된 약의 가격을 협상할 때 의견차가 심할 수 도 있고, 심지어 대체 수단이 없는데도 발매를 못하기도 한다.

가격이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특허가 만료되었는지, 예측보다 많이 사용되어 건보재정에 부담이 큰지 등을 고려하여 조정을 거친다. 결정된 가격 안에서도 또 변동이 생긴다. 원료의약품(API)의 품질보장을 위해 DMF(drug Master File)등록이 의무화가 되는데, DMF등록 원료의약품이 독점적이라면 원료가가 치솟게 되어 그 제품을 계속 생산할건지 원가의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혹 정부의 약가시스템에 또 다른 불만인가 오해가 있을까 봐 ‘의약품의 가치’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의약품의 가격’이 맞다. 여기서는 환자가 사용하는 의약품의 가격보다 조금 더 넓게 봐서 제약산업간(B2B) 의약품의 거래에 수반된 가격의 변동과 합리성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예전에는 연구개발력이 큰 다국적사에서 신제품이 개발되면, 아시아 지역에서는 시장 크기나 상징성 때문에 중국, 일본으로 우선 런칭했다. 우리나라는 영업력이 큰 국내기업에 라이선스 생산을 하게 하거나, 수입하게 하여 영업을 담당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기업의 입장에서 라이선싱-인이 되는데, 시장장악력이 높은 제품일수록 큰돈을 들여서라도 라이선싱-인을 하려고 국내사간의 경쟁이 치열했다. 블록버스터를 확보함으로써 매출과 마진을 얻고 특정 임상과에 다른 제네릭도 팔 수 있는 이점 때문이다.

대체수단이 적은 약물일수록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곤 했다. 그 제품의 한국 내 시장규모, 허가 받기 위해 필요한 임상시험 비용, 개발비용 등을 고려해서 양자가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라이선싱 가격은 얼마인가? 하는 합리적인 판단보다 다른 회사가 우위를 선점하기 전에 그 정도 초기비용은 감내할 수 있는가? 등 주먹구구식 판단으로 계약이 체결되는 경우도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도입된 제품도 성장기를 거쳐 안정기에 이르면 개발사가 계약불이행(흔히 판매목표미달)을 이유로 제품을 회수하여 소송으로 가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시장규모가 세계 10위 정도로 큰 나라가 되면서 개발능력이 있는 회사는 직접 지사를 설립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 수입과 국내제조의 차별마저 없다 보니, 제조는 인건비가 싼 생산사이트에서 하고, 수입허가는 지사에서 그리고 시장확대에 필요한 마케팅은 직접, 국내 기업은 영업에 의한 단순 판매(distribution)만 담당시키다 보니 판매마진이 갈수록 박해진다. 국내 유수기업이 자체 R&D보다 도매품목의 비중이 높아지고 연구개발에 투여되어야 할 돈이 다른데 새지 않는가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이렇게 복잡다단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국내 제약사들은 신물질(NME) 27종, 개량신약(IMD) 93종을 개발했다. 증기가 가득 차면 엔진을 움직이듯, 국내 제약사들도 이젠 라이선싱-아웃의 열기가 가득하다. 글로벌화의 본질은 연구 개발된 신제품을 글로벌로 가서 경쟁하라는 것이다. 비록 완결되지는 않았지만, 모 회사가 수조원대의 라이선싱-아웃에 성공하면서 우리나라도 항공기나 원전이 아니라 제약도 조 단위의 기술료를 받을 잠재력이 있구나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타사에게는 신제품을 글로벌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단하고 거래하는가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약품을 라이선싱 할 때 판매자는 더 비싸게, 매수자는 더 싸게 매매하려는 인식의 차이는 당연하다. 개발과정에서 라이선싱계약을 이행치 못할 사유가 얼마든지 발생할 소지도 많다. 어떤 나라는 개발비용에 못 미치지만 런칭함으로서 얻어질 무상의 이익을 염두에 둘 때도 있고, 어떤 나라는 시장의 규모가 커서 예상한 것 보다 훨씬 큰 비용을 받을 수도 있다.

kGMP인정이 어려우니 기술을 이전(technical transfer)해 주면 러닝 로열티를 내겠다는 경우도 있고, 아예 플랜트까지 지어 달라는 등 상황에 따라 거래의 형태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글로벌 라이선싱에 대한 열의가 고조되는 이때, ‘한국바이오기술평가학회’가 창립된다. 아마 바이오개발품의 기술거래를 위한 가치평가와 새로 도입하는 신물질의 경제성 평가가 주된 일이 될지 모르겠지만, 국내사의 개발제품이 글로벌화 되기 위해 얼마의 가격과 조건이 합리적인가를 연구하고 조언하는 것도 기업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학회의 안착과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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