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윤
연세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의료법윤리학과장

[의학신문·일간보사=의학신문] 인간 유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활발해짐에 따라 정밀의료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지고 있다. 1990년 시작된 인간게놈프로젝트(HGP)는 최근 미국국립보건원(NIH)의 ‘All of Us 프로그램’, 영국의 ‘100,000 Genomes 프로젝트’와 같이 주요 선진 국가의 정부 주도형 대규모 연구 코호트 구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정밀의료를 위한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들이 준비되고, 일부는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정밀의료 연구는 개인의 진료기록 외에 유전자 분석 결과, 웨어러블 기기에서 실시간으로 측정되는 생체정보, 위치정보 등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 수집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연구 자원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전설명과 서면동의 획득 등 연구자의 자발적 참여의사 존중, 데이터 보안 등의 중요성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노력도 연구 참여자의 보호를 위한 법·제도적인 안전망이 미흡하다면 반쪽짜리 보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유전자 정보에 근거한 차별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은 2008년 제정된 유전자정보차별금지법(GINA)에서 건강보험과 고용에서의 유전자 차별에 관한 문제를 별도로 다루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에는 2017년 유전자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 시행 중이다. 영국은 정부와 보험협회가 맺은 자발적 형태의 협약으로 보험 영역에서의 유전정보 활용으로 인한 차별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고 있다. 각 국가의 유전자 정보 차별에 관한 규정의 구체적인 내용은 △차별금지 사유인‘유전정보’의 범위 △차별금지 영역(예: 보험·고용·교육) △금지되는 행위 즉, ‘부당한 차별’의 의미 △예외의 인정 사유 등에서 차이가 있다.

예컨대 미국은 가족력을 유전정보에 포함시켜 건강보험에서 이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영국은 유전자 검사의 종류를 예측적 검사와 진단적 검사로 구분하여 전자에 대해서만 협약을 적용하고, 후자는 보험회사가 활용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46조에서 ‘유전정보에 의한 차별 금지 등’을 규정하고, 그 위반에 대한 벌칙 규정도 동법 제67조에 두고 있다. 제46조 제1항은 “누구든지 유전정보를 이유로 교육·고용·승진·보험 등 사회활동에서 다른 사람을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여, 유전정보를 이유로 한 차별의 금지를 선언하고 있고, 동조 제2항에서는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타인에게 유전자검사를 받도록 강요하거나 유전자검사의 결과를 제출하도록 강요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여 유전자검사 실시 및 그 결과의 제출을 강요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상당히 엄격한 규정을 두고 있는 것 같지만 이 규정만으로 유전자 정보 차별의 문제를 다루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유전자 정보 차별에 관한 규정의 구체적인 내용은 유전정보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 부당한 차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어떤 사유를 예외로 인정할 것인지 등에 달려 있는데, 이러한 내용들이 모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법률에 자세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는 것이 능사가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법률의 경직성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여 법제정에 반대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 차별 금지에 대한 법적 안전보장 없이 연구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몇 십 년 후에 연구 참여에 따른 개인적인 불이익을 당한다면, 연구를 추진하고 진행한 국가 입장에서 매우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유전자 정보에 근거한 차별 문제의 법적 규율 방안은 우리가 앞으로 정밀의료 시대를 준비하고 실현해 가기 위해 시급히 마련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