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상무

[의학신문·일간보사] 어느덧 6월이다. 새해, 새 출발의 각오가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참 속절없다. 지금도 국내외 굵직굵직한 이슈들은 쫓아가기 벅찰 정도로 쏟아지고 있다. 올해 6월은 그 어느 때보다 한반도와 국제정세는 물론, 우리네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사안들이 넘친다. 이런 때일수록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고 ‘나는, 우리는 과연 제대로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질문을 던져보는 게 어떨까? 그런 자문자답이 남은 시간들을 지혜롭게 보내게 하는데 좋은 약이 될 것이다.

‘국민산업으로서의 제약·바이오산업 위상 강화’.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회원사들이 올 한해 다짐했던 사업목표다. 제약주권의 주체로서 우리 손으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고, 또 대한민국의 대표적 미래 성장동력으로서 양질의 일자리를 비롯한 국부창출에 앞장서겠다는 선언이었다.

‘국민산업’은 안전하고 우수한 의약품을 만들고, 고용만 많이 한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이름은 아님은 물론이다. ‘국민가수’ ‘국민배우’처럼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일관되고 자랑스러운 존재감이 있어야 한다. ‘윤리경영 확립과 유통 투명성 제고’를 사업목표 실현의 제 1과제로 못박은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였다.

제약산업계의 윤리경영(Ethical Management) 기조는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이제 대세가 되었다. 12일 개최되는 역사적 북미정상회담의 최대 이슈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 핵폐기(CVID)’에 빗대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윤리경영(CVIE)’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국제 표준의 부패방지 경영시스템(ISO 37001) 인증 확산은 그 단적인 예다. 한미약품을 시작으로 유한양행, 코오롱제약, 대원제약, 일동제약, JW중외제약 등 6개사가 연이어 인증을 받았다. 내부심사원 양성교육과 예비심사, 1차·2차·확인 심사 등 길고도 엄정한 사전 인증 절차를 진행중인 제약사들의 행렬도 늘어서 있다.

일각에서 제약기업들의 ISO 37001 인증을 일단 따고 보는 식의 형식적인 자격증 취득이나 불법 리베이트 관련 적발시 회사측의 면책을 위한 보험성 증빙자료 챙겨두기 정도로만 여기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같은 시각은 제도 자체와 제약산업계의 절박한 상황인식에 대한 몰이해의 결과물이다.

ISO 37001 인증은 최소 6개월에 걸쳐 조직 전반의 시스템과 모니터링 체계 등을 현장 실사로 검증하는 매우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 한 번 인증서를 발급받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연 1회 이상 시스템적으로 작동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조직의 속살을 드러내야 하는 사후관리 심사도 받아야 한다. 3년마다 인증서 갱신심사도 받아야 하는 만큼 회사 전반의 부정부패 예방에 큰 효과가 있다는 국제적 공인이 내려진 상태다.

사실 윤리경영 확립, 부패방지시스템 구축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민기업과 같이 ‘사랑받는 기업’이 반드시 지녀야할 기업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산업 전반에 걸치거나 또는 우리 산업과 관련한 제도적·사회적 요구를 접하면서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제약산업의 기업문화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정부가 최근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등에 대한 규정’을 개정, 제약회사 임원이 직원 폭행 등 비윤리적 행위로 벌금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경우 인증이 취소될 수 있도록 한 것이나 오는 7월 우선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적용하는 주당 최대 52시간 근무제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제약산업은 그간 타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경직돼 있으며, 보안을 우선시해온 산업 특성으로 투명성이 높지 않은 곳으로 여겨져 왔다.

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수 있는 기업문화가 제약기업 오너나 최고경영자의 의사결정 우선순위에서 경시되거나 립서비스(lip-service) 정도로 여겨진 경향도 있었다. 이러다보니 우리 스스로 국민산업이라 주창하며 윤리경영과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 등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국민들의 사랑과 신뢰를 얻기에는 부족했던 것 같다.

이제는 리베이트 근절을 통한 윤리경영의 차원을 넘어 기업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우리 산업계의 기업문화를 혁신하는 노력을 가속화해야할 시점이다.

특히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상상 이상으로 확대되고 있는 현실, 내부 고객인 직원들과 국민들의 기업문화에 대한 기대치도 전례없이 높아진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4차 산업혁명이 일과 경영을 바꾸고 있고, 사회 전체가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받고 있는 현실에서 누가 뭐라 해도 정도를 걷는 것, 스스로에게도 당당하고 건강한 기업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국민산업으로의 왕도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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