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 삭감으로 진료 포기 병원 다수…임상 의료현장 시각 반영한 현실적 개선책 필요
정부 관계자들, "전문센터 필요성 동의하나 희귀질환 정비 우선 작업 중" 즉답 회피

[의학신문·일간보사=정윤식 기자] 혈우병 치료에 사용되는 응고인자제제 보험급여삭감 등 불합리한 규제로 인해 혈우병을 관리하는 병원이 진료를 포기하는 일이 속출하면서 환자 맞춤식 치료 도입을 위한 지원 정책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3일 오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혈우병 환자의 맞춤식 치료 도입; 혈우병 등 출혈질환 치료환경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 토론자들.

혈우 환자들의 수명이 비혈우인들과 비교해 크게 차이나지 않을 만큼 길어지고 그만큼 환우 수도 늘어나고 있음에도 적절히 치료받을 수 있는 실질적인 의료기관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

이 같은 주장은 13일 국회도서관 지하 1층에서 김승희 국회의원(자유한국당)과 한국코엠회가 주최한 ‘혈우병 등 출혈질환 치료환경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이날 기조발제를 진행한 박정서 한국코헴회 회장은 응고인자제제 급여삭감 문제와 환자 개개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화된 처방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박정서 회장은 “응고인자제 보험급여삭감을 이유로 병원과 의사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두려운 것은 뇌출혈, 복강출혈, 사고외상 등 응급출혈 시 전국의 응급의료 센터에 조차 혈우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응고인자제제가 없다는 현실”이라고 염려했다.

박 회장은 이어 “환자마다, 연령에 따라 체내에 투여된 응고인자가 활성화되는 정도가 달라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활성화도를 갖는 환우들은 획일화된 처방으로는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행 복지부 급여기준에서 응고인자 처방기준은 환자의 개인적인 특성이나 출혈정도와 무관하게 몸무게 kg당 획일화된 용량을 처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성인의 경우 1회 내원에 응고인자제제 최대 5회분까지 허용하고 있으며, 월 최대 10회분, 추가출혈 시 다시 내원해 2회분씩을 규정하고 있다.

즉, 대부분의 환자들이 적절한 양의 약품을 처방받기 위해서 전국에 몇 군데 있지도 않은 처방병원에 한 해 동안 30~40회 내원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 박정서 회장의 설명이다.

이에 박정서 회장은 국내와 혈우사회의 발전 속도를 나란히 하고 있는 유럽, 북미 국가들처럼 환자별 약동력학 지수와 의사의 임상적 소견에 따른 맞춤식 치료 및 지역별 거점병원에서 혈우병치료센터의 형태로 협진을 통해 치료비용을 절약해야 한다는 제언을 건넸다.

박 회장은 “희귀질환에 대한 뛰어난 발전상과 사회적 지원정책을 조금만 더 환우의 현황을 고려해서 임상 의료현장의 시각을 반영해 손본다면 추가적 재정소모 없이도 혈우병 치료환경을 획기적으로 진일보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왼쪽부터) 한국코엠회 박정서 회장, 경북의대 이건수 명예교수, 신촌세브란스 한정우 교수.

패널토론자로 참석한 의료관계자들도 대동소이한 입장을 보였다.

경북의대 이건수 명예교수는 “1998년부터 심평원에 의한 환자들의 진료비 무더기 삭감이 단행됨으로써 혈우병을 진료하는 곳은 세브란스 병원뿐인 상황이며 진료를 포기한 대학병원들은 진료에 회기 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교수는 “보험 불인정 사례를 바탕으로 문제점과 해결책을 심사숙고해 적절한 진료가 보장되는 항체환자진료지침 마련이 필요하고 예방치료를 전 연령의 중증 환자들에게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개인별 맞춤치료를 인정하고 지역별 응급실에 혈우병약이 비치돼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세브란스병원 한정우 소아혈액종양과 교수 또한 “다학제 관리를 위한 지원이 미비하고 혈우병 환자의 진료 시 소요되는 인력, 기술, 재원에 대한 보상이 없어 전문 의료진들이 진료를 기피한다”며 “전문치료센터 지원을 통해 권한과 책임을 강화하고 다학제관리모델 활성화로 약제비에 치중한 관리 정책을 탈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정부, 전문센터 필요성 일부 동의…희귀질환관리법에 의한 희귀질환 정비 우선 작업 중

반면 정부관계자들은 혈우병 환자를 위함 맞춤식 치료 도입의 필요성 등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단, 전문치료기관의 필요성에는 일부 공감을 표했고 삭감문제로 집중 지적을 받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항체환자 외 일반 혈우병 환자에 대한 삭감은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강조해 반박했다.

심평원 이규덕 위원장은 “일반적인 혈우병 환자에 대한 삭감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단지 수술 등의 여러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고민 중인데 혈우병은 다른 희귀질환에 비해서 빠르게 최신의학이 발전하고 새로운 약이 나오고 있어 이에 대응하려 노력 중인 것을 이해해 달라”고 전했다.

(사진 왼쪽부터) 복지부 보험약제과 곽명섭 과장, 질병관리본부 안윤진 과장,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이규덕 위원장.

질병관리본부 안윤진 과장도 “정부는 희귀질환관리법 등을 통해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나가고 있는 중인데 혈우병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병도 있지만 포함되지 못해서 고민하는 질환의 환자들도 있어 정부는 관리 대상 정리 작업을 우선 진행 중”이라며 “희귀질환관리법 안에는 연구나 치료 관리 등의 범위 안에서 전문기관을 지정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이에 포함시켜 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

복지부 보험약제과 곽명섭 과장은 “수가 문제는 혈우병 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증환자 등에 대해서도 동일한 문제”라며 “심사제도는 심평원과 함께 최근 자체적인 논의를 진행 중에 있고 급여기준은 확답은 할 수 없지만 정책적인 외부 토론회와 전문가 간담회를 통해 나온 의견들을 전문위원회에 전달해 안건에 붙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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