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혈 윤리성 및 안전성 확보, 국민 생명과 신체 안전 보장하는 공익 커”

[의학신문·일간보사=오인규 기자] 분만 후 아기의 탯줄에서 나온 혈액인 ‘제대혈’의 매매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법에 대해, 경제적 이익 추구에 앞선 공익적 가치를 높이 사며 문제가 없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기증제대혈 중심의 제대혈법상 공공관리체계의 합헌성을 확인한 것이다.

헌법재판소(소장 이진성)는 지난 30일 재판관들의 전원 일치된 의견으로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2010. 3. 17. 제정) 제5조 제1항 제1호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선고했다.

위 조항은 타인의 제대혈, 제대혈제제 및 그 밖의 부산물을 제3자에게 주거나 제3자에게 주기 위해 받는 행위 또는 이를 약속하는 행위를 누구든지 금전 또는 재산상의 이익, 그 밖의 반대급부를 주고받거나 주고받을 것을 약속하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앞서 청구인은 제대혈 줄기세포에 관한 독점판매권의 존재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다 기각됐다. 청구인은 상고심 중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 제5조 제1항 제1호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으나 기각되자 지난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번 결정 이유에 있어 헌법재판소는 “제대혈의 체계적 관리체제를 구축하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거나 인체에 위해를 주는 방식의 제대혈 관리를 차단하고, 제대혈의 채취·보관·이식·연구 과정에서 제대혈의 품질과 의학적 안전성을 확보해 국민보건상의 위험 발생을 미리 막으려는 의도에서 입법된 것으로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한 제대혈의 유상거래를 금지하는 것은 위와 같은 입법목적 달성에 적합한 수단이라는 것.

헌재는 “제대혈이 상업적 매매의 대상이 될 경우 그 자체로 인격과 분리된 단순한 물건으로 취급되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측면이 있다”며 “영리성에 기초할 경우 장기 보관이 전제 되는 제대혈의 특성상 관리 소홀에 따른 위해 발생의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보관기간이 지났거나 사용에 부적합한 제대혈이 불법적으로 유통될 위험성도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현재 제대혈법은 유상거래를 금지하는 대신 기증을 확충하는 방법으로 기증제대혈 중심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심판대상조항도 제대혈의 거래행위를 모두 금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상거래만을 금지함으로써 제대혈을 활용한 치료 또는 연구행위가 위축되지 않도록 하고 있으며 공공관리체계를 통해 보건의료 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균등한 접근을 보장할 수 있다.

제대혈과 유사한 인체유래물인 △장기 △인체조직 △혈액에 대해도 관련 법률에서 유상매매를 금지하고 무상 기증만을 허용하고 있으며, 외국에서도 제대혈을 포함한 인체자원의 안전한 관리와 활용을 위한 공적관리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모두 종합해 보면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한 계약의 자유 및 재산권 제한이 침해의 최소성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

헌재는 “청구인이 받게 되는 불이익보다는 제대혈의 윤리성과 안전성을 확보해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장하고, 국민보건의 향상에 기여하려는 심판대상조항이 추구하는 공익이 더 크다”며 법익의 균형성도 갖췄다고 판단하고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청구인의 계약의 자유 및 재산권을 침해하지 아니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제대혈법이 제대혈의 유상거래를 금지함으로써 청구인이 이 사건 계약에 따른 독점판매권을 상실하는 불이익을 입었지만, 독점판매권의 대가로 지급한 돈의 반환 청구권을 행사해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청구인이 운영하던 공유제대혈은 제대혈법 부칙 제4조에 따라 가족제대혈로 인정되는데, 이런 사정에 비추어 보면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하여 청구인이 입는 불이익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공익적 가치는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결국 청구인의 기존 법질서에 대한 신뢰의 가치에 비하여 제대혈의 유상거래를 금지하는 심판대상조항이 추구하는 공익이 훨씬 우월하므로 신뢰보호원칙에 위반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사건의 의의에 대해 헌재는 “최근 생명공학의 비약적 발전으로 제대혈의 의학적·과학적 활용 가치가 높아진 상황에서 제대혈의 유상거래를 금지하고 있는 제대혈법의 심판대상조항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에 대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특색이 있다”고 주목했다.

이어 “제대혈을 활용한 치료 또는 연구행위가 위축되지 않도록 하면서도 제대혈의 체계적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제대혈의 채취·보관·이식·연구 과정에서 제대혈의 품질과 의학적 안전성을 확보해 국민보건상의 위험 발생을 미리 막으려는 심판대상조항의 입법목적을 긍정하고, 기증제대혈 중심의 제대혈법상 공공관리체계의 합헌성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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