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균
이정균내과의원장·의사평론가

‘4월(음력)’이라 초여름 되니 입하 소만의 절기로다. 비온 끝에 햇볕이 나니 날씨도 화창하다. 떡갈나무 잎이 피어날 때에 뻐꾹새가 저주 울고 보리 이삭이 패어나니 꾀꼬리가 노래한다. 농사도 한창이오.


‘농가월령가 4월령’은 이때가 모심기를 비롯해 한해 농사를 시작하는 중요한 시절임을 강조하는 노래다. 옛사람들은 일일이 달력에 의하지 않아도 나무를 보고 농사철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주로 들녘의 가장자리에서 커다란 나무로 자라면서 나무 전체를 온통 새하얀 꽃으로 뒤집어쓰는 이팝나무가 있어서다.

모내기가 한창인 5월, 옛날 우리 조상들은 모내기가 시작되기 전에 바로 이 나무! 이팝나무를 보고 올 해의 풍년을 점쳤다고 한다. 모내기를 하기 전에 습도에 따라서 나무의 꽃이 많이 피거나 적게 피기도 하는데 꽃이 핀 모양에 쌀밥이 얹혀진 것 같다는 모양에서 유래되었다는 이팝나무. 마을입구부터 이팝나무 가로수가 쪼르륵…. 꽃밥을 얹고 있다. 이팝나무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 자기향상이다. 공광규 시인의 시 ‘이팝나무 꽃밥’을 옮긴다.

청계천이 밤새 별 이는 소리를 내더니 / 이팝나무 가지에 흰쌀 한 가마쯤 안쳐놓았어요
아침 햇살부터 저녁 햇살까지 며칠을 맛있게 끓여놓았으니
새와 벌과 구름과 밥상에 둘러앉아 / 이팝나무 꽃밥을 나누어 먹으며 밥정이 들고 싶은 분
오월 이팝나무 꽃그늘 공양간으로 오세요 / 저 수북한 꽃밥을 혼자 먹을 수도 없지요
연락처는 이팔이팔에 이팔이팔

시집: ‘담장을 허물다’ 창비에서


공광규의 시 ‘이팝나무 꽃밥’에는 이팝나무의 특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우리의 주식인 쌀밥과 관련된 이팝나무는 낙엽고목으로 20~25m 정도로 자란다. 수피(樹皮)는 회갈색, 어린가지는 황갈색으로 벗겨진다. 잎은 마주나기로 난다. 달걀형, 끝은 둔하게 뾰족하거나 약간 오목하며 밑부분은 둥근 편이다. 꽃은 암수딴그루 또는 수꽃 양성화 딴그루다.

김해시 한림면 신천리 소재 천연기념물 제185호인 이팝나무

꽃이 피어도 벌과 나비가 모여들지 않고 꽃이 활짝 피는 해에 풍년이 든다하여 ‘풍년 꽃’으로도 부른다. 천연기념물 제307호인 김해시 주촌면의 이팝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령스런 나무로 여겨진다. 5월쯤 피는 흰색의 꽃은 전체의 나무를 흰 눈으로 덮은 듯하여, 영어로 ‘Snow flower’라고도 부른다. 속명 ‘카오난투스(chionanthus)’는 ‘흰 눈(雪)’을 뜻하는 그리스어 ‘키온(chion)’과 ‘꽃’을 뜻하는 ‘안토스(anthos)’의 합성어로, 흰 꽃이 만발함을 뜻한다. 종소명 ‘레투수스(rethosus)’는 ‘약간 오목하다’라는 뜻으로 잎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 7개 소가 주로 남부 지방의 곡창지대에 있는 것을 보면, 이팝나무가 풍년과 관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오래된 이팝나무는 김해시 한림면 신천리 소재(천연기념물 제185호)로 수령 600년을 자랑한다.

이팝나무는 다른 어떤 서양에서 들어온 더 귀한 나무들보다 우리 정서에 맞는 나무에 든다. 아름드리 이팝나무 가지에는 눈처럼 하얀 꽃이 가득가득 달려 그 일대는 온통 하얀 꽃구름이 일어난다. 늦은 봄 이팝나무 꽃송이는 온 나무를 덮을 정도로 달려서 멀리서 바라보면 때 아닌 흰 눈이 온듯하다. 그 소복한 꽃송이가 사발에 얹힌 흰쌀밥처럼 보여 이밥나무라고 부르다가 이밥이 이팝으로 변해다고 한다. 조선시대 귀한 쌀밥은 왕족이나 양반이 이씨들만 먹는다 하여 쌀밥을 이밥이라고 불렀다하니 가난한 백성의 심사가 보이는 듯하다.

이팝나무가 쌀밥나무인 탓으로 이팝나무는 한 해의 풍년을 점치는 나무로까지 알려지면서 흰 꽃이 만발하는 해는 풍년이, 꽃이 많이 피지 않는 해는 흉년이 든다고 믿어왔다. 큰 이팝나무가 자라는 곳에는 매년 이 나무가 꽃이 피는 시기에 수많은 농군들이 꽃구경하러 오게 되었는데, 이 꽃구경은 봄꽃놀이가 아니라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이 양식 걱정하는 가슴 졸이는 꽃구경이었을 듯싶다. 이 꽃은 여름의 초입 입하(立夏)에 피기 때문에 입하목(立夏木)이라 불렀고, 입하가 연음되어 ‘이파’ ‘이팝’으로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전라북도 일부 지역에서는 ‘입하목’이라 부르기도 하고, ‘이암나무’라 부르며, 어청도에서는 ‘뻣나무’라고 한다.

이팝나무는 풍년을 예고하는 나무가 되었고, 농민들은 매년 꽃이 얼마나 많이 피는지가 유별난 관심이 되면서 이팝나무는 신목(神木)의 반열에 올랐다. 크게 잘 자랐고 오래 산 나무로 이름이 알려진 열일곱 주 중 일곱 주는 천연기념물이 되었고, 모두 풍년을 점치는 기상목이 되었다.

전남 순천시 평중리 제36호 이팝나무 천연기념물은 동네사람들의 기상목이며, 정자목이 되어 신목으로 불리면서 당산목이 되었다. 전북 진안에는 천연기념물 제214호 이팝나무가 있는데, 이 마을에서 어린아이가 죽으면 반드시 이 나무가 자라는 숲에 묻는 풍속이 있어 지금까지 보존되면서 죽은 아이들의 영혼이 농사짓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 해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 풍흉을 예견하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물푸레나뭇과의 친숙한 나무들이 있다. 이팝나무를 비롯하여 미선나무, 쥐똥나무, 물푸레나무, 개나리, 광나무, 꽃개회나무 등이 있다.

이팝나무가 꽃이 필 무렵이 되면 어린아이 손바닥 만한 크기의 잘생긴 잎새도 잘 보이지 않는다. 개나리와 같은 과에 속하는 꽃임을 증명하듯 꽃잎 아래가 붙은 채 네 갈래로 갈라졌지만 너무 깊고 가늘게 갈라져 전혀 색다른 느낌을 준다. 한번 핀 꽃은 20일이 넘도록 은은한 향기를 사방에 내뿜다가는 마치 눈이라도 내리듯 우수수 떨어지는데 낙화 순간 또한 장관이다. 꽃이 지고 나면 꽃과는 정반대 빛깔의 보랏빛이 도는 다원형의 까만 열매가 열린다. 이팝나무의 영어이름은 ‘푸린지트리(Fringe Tree)’이다. 서양인들은 이 나무를 보고 낭만적으로 흰 눈이나 술을 생각했지만 우리 조상들은 하얗게 핀 꽃을 보고도 흰쌀밥을 생각했으니 조상들의 가난이 아프게 느껴진다. 우리에게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전설이 하나있다.

“옛날 경상도 어느 마을에 열여덟 살에 시집온 착한 며느리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시부모님께 순종하며 쉴 틈 없이 집안일을 하고 살았지만, 시어머니는 끊임없이 트집을 잡고 구박하며 시집살이를 시켰다. 온 동네 사람들은 이 며느리를 칭송하는 한 편 동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큰 제사가 있어 며느리는 조상들께 드리는 쌀밥을 짓게 되었다. 항상 잡곡밥만 짓다가 모처럼 쌀밥을 지으려니 혹 밥을 잘못지어 시어머니께 꾸중을 들을 것이 겁난 며느리는 밤에 뜸이 잘 들었나 밥알 몇 개를 떠서 먹어보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순간 시어미가 부엌에 들어왔다가 그 광경을 보고 제사에 쓸 멧밥을 며느리가 먼저 퍼 먹는다며 온갖 학대를 하셨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며느리는 그 길로 뒷산에 올라가 목을 매어 죽었고, 이듬해 이 며느리가 묻힌 무덤가에서 나무가 자라더니 흰 꽃을 나무 가득 피워냈다.

이밥에 한이 맺힌 며느리가 죽어서 된 나무라 하여 동네사람들은 이 나무를 이팝나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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