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닭의 울음소리는 ‘희망’의 신호, 정유년 새해는 모두에게 희망차고 값진 한해가 되길 소망해 본다”

권이혁
전 보사부장관 · 의사평론가

새해(2017년) 부터는 글도 안 쓰고 사회활동도 일체 그만두기로 했었다. 전에 쓴 바와 같이 ‘유유자적(悠悠自適)’이라는 나의 인생 슬로건을 바탕으로 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 무엇에도 누구에게도 구애 받지 않고, 평안하고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삶을 살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래서 사실상 정유년(丁酉年)에 들어와서는 사회활동도 모두 그만두었고, 홀가분한 시간을 보내
도록 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변의 몇몇 지인들이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며 계속해서 원고도 쓰고 사회활동도 전폐(全廢)하지 말라고 권유한다.

솔직히 나는 내 자신이 ‘우리 시대를 따르지 못하는 사람’ 즉 ‘시대에 뒤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다. 사실상 신문을 읽거나 TV를 시청해도 내가 알지 못하는 단어를 많이 만나게 되고, 나의 상식으로는 판단하기 곤란한 말들을 적지 않게 듣게 된다. 그럴 때마다 “아예 세상사에 관심을 갖지 말자”고 자신에게 타이를 때가 간혹 생긴다. 그래서 앞에서 쓴 바와 같이 ‘유유자적’이 내가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사실을 되풀이 고백한다.

그럼에도 주변의 진지한 권유에 따라 나는 나의 주장을 보완하기로 했다. 즉 전과 같지는 못하더라도 원고 집필이나 경도(輕度)의 사회활동은 계속하기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주책없는 늙은이’가 된 셈이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주책없는 늙은이’라는 말 만은 듣지 않도록 언행하겠다고 몇 번이고 내 자신에게 다짐했었다. 내가 제일 피하고 싶은 것이 ‘주책없는 늙은이’라는 평을 받는 일이다. 그래서 모든 힘을 다해서 ‘주책없는 늙은이’가 되지 않도록 노력은 하고 있지만 이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어쨌든 지긋지긋하고 빨리 지나갔으면 했던 병신연(丙申年)은 가고 정유년 새해를 맞이했다.

개인적으로는 지극히 아끼고 사랑했던 나의 맏딸 인택(仁澤)이를 빼앗아가 통한이 극에 달하게 됐고, 정치·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다시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던 2016년, 특히 경제 분야에서는 1990년 IMF 위기에 버금가는 금융사태를 빚었다고 하는 2016년이 가고 정유 새해를 맞이한 것이어서 기분이 홀가분하다.

정유년은 ‘붉은 닭의 해’다. “밝다”는 것은 “밝다” 또는 “총명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무속 신앙에서는 닭이 “음기와 액운을 쫓고 양기를 가져오는 동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닭을 그려서 대문 등에 붙여두고 귀신을 쫓고 복을 기원하는 습관이 있기도 했다.

닭을 생각하면 황해도 연안(延安)에서 거주하시던 나의 고모님 생각이 떠오른다. 고모부는 1000석 가까운 대농지주이셨다. 나는 명절 때가되면 연안에 갔다. 고모 내외분을 뵙고 인사 올리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그것보다는 닭고기를 먹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다. 당시에는 양계하는 농가가 많았으며, 귀한 손님에게 닭요리를 대접하는 것이 관례였다. 나는 귀한 손님이 아니고 집안 조카의 한사람인데 고모님께서는 꼭 닭을 삶아서 주셨다. 그 맛은 참으로 좋았다. 비슷한 나이의 고종 4촌 형제를 만난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닭고기를 대접 받는 것이 무척 좋았다.

정유년이 되니 왠지 연안농장의 이모저모가 떠오른다. 그리고 방문할 때마다 닭요리를 마련해주시던 고모님 생각이 난다. 고인이 되신지 오래지만 나를 ‘귀한 손님’ 같이 대접해주시던 고모님 모습이 그리워진다. 요리솜씨도 훌륭하셨지만 방문 때마다 닭요리로 환대해주신 고모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여러 차례 소개한 바와 있지만 나는 1923년에 고향인 경기도 김포군 하성면 석탄리에서 출생하여 3학년까지 하성보통학교에 다녔다. 고향집에는 물론 ‘닭장’이 있었다. 어느 농가이고 10-20 마리정도의 닭을 기르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잊지 않고 있는 사실은 새벽이 되면 닭의 우렁찬 울음소리에 잠을 깨는 일이었다. 닭이 아침과 ‘새 하루’의 시작을 알려주는 것이다. 닭의 울음소리는 어둠 속에서 빛의 도래를 알린다고 풀이 되고 있다. 생각할수록 닭의 존재는 신기하다. 닭의 새벽 울음소리가 사람들의 영혼을 깨워주고 희망과 개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현재는 닭과 관련이 없는 서울에서 일상생활을 하지만 아침에 잠에서 깨어날 때는 고향에서 듣던 닭의 새벽 울음소리를 연상하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정유년을 맞이하면서‘ 닭’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 생각할수록 이 세상의 만물은 각각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됐다. 혼돈과 무질서가 판을 쳤던 2016년을 보내고, 정유년을 맞이한 우리들은 ‘희망’을 새해의 상징으로 내걸었다. 닭의 새벽 울음소리를 ‘희망’을 알리는 신호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새해를 맞은 지 스무날이 지난 오늘까지도 우리들의 주위환경은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하다. 사회·경제적으로 개혁과 혁신은 찾아보기 힘들고 얼어붙은 정국은 풀릴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 보인다. 복잡한 국제정세가 더욱 복잡해진 듯하다.

특히 나는 한중·한일 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들 두 나라와 우리나라는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이들과의 관계가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까닭이다.

‘희망’을 내걸고 있는 정유년이 우리들의 뜻과는 거리가 먼 길을 가고는 있지만 ‘희망’을 외치고 소원하는 우리들의 국민정신은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환경에 휩싸였던 우리들이지만 새해를 맞아 언제나 맑고 쨍쨍한 닭의 새벽 울음소리를 마음속 깊이 간직한다면 반드시‘ 희망찬 정유년’을 값지게 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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